15편 위령공(衛靈公) 제24장
자공이 물었다. “평생에 걸쳐 실천해야 할 한마디의 말이 있을까요?” 공자가 말했다. “아마도 타자를 배려하는 서(恕)일 것이리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이 당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공자 가르침의 키워드를 크게 셋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인(仁)과 예(禮), 도(道)와 덕(德) 그리고 충(忠)과 서(恕)입니다. 도는 천지만물 운행의 원칙과 법칙, 덕은 마음 그릇의 크기를 말합니다. 인은 그런 도와 덕을 융합해 공동체를 다스리고 이끌 때 필요한 내면적 가치이고 예는 그러한 인을 실천으로 옮길 때 필요한 제도와 문물의 형식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충과 서는 덕의 실천을 위한 가장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충은 자기 충실을 말하고, 서는 타인 배려를 뜻합니다. 조금 변형하면 충은 수기(修己), 서는 치인(治人)이 되고. 인과 예에 접목하면 전자는 극기(克己), 후자는 복례(復禮)로 표현됩니다.
여기서는 서만이 강조됩니다. 인생의 지표로 삼을 한마디 말을 청한 제자가 다름 아닌 자공이기 때문입니다. 자공은 똑똑하고 영민한 만큼이나 자부심도 남다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충실한 충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서가 살짝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대상이 될 사람의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인물 평가를 즐겼습니다. 오죽하면 자공이 인물평을 하는 것을 지켜본 공자가 “자공은 정말 똑똑하구나, 나는 공부하기 바빠 그럴 틈이 안 나던데”라고 꼬집었을까요? 자공의 그런 장단점을 잘 알기에 콕 찍어 서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라고 권한 것입니다.
서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말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입니다. 논어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로 이는 12편 안연 제2장에도 등장합니다. 중궁(염옹)이 어짊(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그 구체적 실천방법 3가지를 말하는데 그중 하나로 언급됩니다. 안회 다음으로 덕행이 높다고 평가됐던 중궁 역시 그 말을 듣고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답했으니 공자의 18번으로 꼽을만한 레퍼토리 중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서양인도 경탄을 금하지 못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예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Do to others as you wish to be done).” 윤리적 차원에서 금쪽같은 말씀이라 하여 황금률이라 불리는 이 메시지를 공자가 그보다 500여 년 전 앞에 또 다른 차원에서 열어젖혀졌음을 발견하고 감탄한 것입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은 20세기 들어 영국 사상가 이사야 벌린이 ‘자유론’에서 제기한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와 짝을 이루면서 소극적 황금률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적극적 자유론은 대다수 국민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전개된 현대 복지국가론의 토대입니다. 소극적 자유론은 그렇게 정부가 적극 개입할 경우 어떤 국민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을 야경국가로 제한해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에 충실한 관점입니다.
얼핏 보기엔 ‘적극적’ 표현이 들어간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이지만 ‘소극적’ 표현이 들어간 쪽이 좀 더 보편적이고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가 시장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사회주의 정부나 저소득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국민 전체의 동의도 없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정부에서 국민의 사유재산권이나 실질적 자유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적극적 황금률 역시 내가 바라는 것을 상대가 싫어한다면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육류를 좋아해 육류를 대접했는데 상대가 채식주의자인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반면 소극적 황금률은 그런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게 해 줍니다.
21세기는 나르시시즘의 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소중하니까요”라는 광고 카피가 등장하고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노래 가사가 불리는 시대이니까요. 자기애에 홀딱 빠진 사람들이 자기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개성을 자랑하고 공유하기 바쁜 소셜 미디어에 심취하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만 찾아서 어울립니다. 어쩌다 그런 나르시시즘이 충족되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우울하다며 엄살, 진상을 부르기 일쑤입니다. 심지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 님’에게 꽃을 뿌리기는커녕 본인은 물론 그 가족에게까지 몹쓸 짓을 저지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에게 충실한 충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서의 발현이 요청됩니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자기 인생이란 드라마에서조차 주인공으로 사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타인이 등장하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결혼식의 주인공으로 서는 경우는 아무리 많아도 10번을 넘기기 힘듭니다. 반면 남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경우는 보통 그 열 배를 넘어서기 마련입니다. 장례식으로 넘어가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기소불욕 물시어인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대표되는 서의 덕목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