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23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말로써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며, 사람됨을 갖고 그 말까지 버리지 않는다.”
子曰: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자왈 군자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
‘논어’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그 징검다리가 되는 언어에 대하여 논하는 책입니다. 이 장의 주된 키워드가 사람(人)과 말(言)이란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군자는 말을 갖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발언에는 언행일치가 드문 세상살이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됨이 별로라 하더라도 그와 별도로 그의 말이 훌륭할 수 있으니 군자는 그 또한 버리지 않는다는 발언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가변적이고 오독될 위험성도 큽니다.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인 말도 많습니다. 따라서 말과 사람을 동일시할 경우엔 오해와 착오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됨을 살피는 지표로서 말의 기능을 도외시할 수도 없습니다.
말은 낚시의 찌와 같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리 짐작하게 해 줍니다. 당연히 찌의 움직임만 갖고 그 생각이 진짜냐 가짜냐를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것이 바람에 의한 것인지, 물고기가 미끼를 툭툭 건드리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미끼를 확 문 것인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사람됨을 판단하는 데도 말을 좌표로 사아 그의 행동거지가 그와 부합하는지를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낚시를 하려면 찌가 필요하듯 사람을 판단하는데도 말은 필요합니다.
공자의 통찰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언행일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말만 번드르르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정 났다면 그가 한 말은 다 부질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해야 할까요? 그래선 안 된다고 공자는 말합니다. 그 역시 말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물지도 않았는데 움직였다고 화내며 찌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짧게라도 진실의 순간과 마주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못난이, 위선자, 배신자, 범죄자, 매국노라도 그런 금빛의 순간을 진심을 담아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판단 착오로 파시즘에 경도됐던 영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시나 친일시인으로 비판받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그렇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인간성의 심연을 훔쳐보고 기지 넘치는 말로 표출한 악인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엄청나게 큰 거짓말을 하라”는 아돌프 히틀러의 발언,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번지르르한 말만 믿고 대단한 인물이라 판단해선 안 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앞의 격언을 뒤집으면 이런 표현 또한 가능합니다. “항상 빛나는 건 아니지만 금이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씩 빛을 발하는 게 있다.” 평균 이하의 인물이거나 심지어 악당일지라도 그 역시 진실되고 멋진 말을 남길 수 있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