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본디 독립적 지식인!

15편 위령공(衛靈公) 제2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자긍심이 높되 다투지 않고, 무리를 짓되 당파를 만들진 않는다.”


子曰: “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

자왈 군자긍이부쟁 군이부당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제가 II(Independent Intellectual)라고 부르는 지식인입니다. 정치, 경제, 학문적으로 독립된 사유를 펼치는 지식인입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II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를 제외하고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공자의 사후 성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나라 이후 공자를 비조로 모시는 유학이 국가이념으로 채택됩니다. 또 당나라 이후 유학 텍스트 기반의 과거제도가 도입됩니다. 이후 유학자라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해 입신양명을 해야만 지식인으로 공인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지 않기에 거침없이 국가와 제왕을 비판할 수 있었던 공자, 맹자, 장자의 전통은 깨끗이 사라집니다. 과거에 응시한다는 자체가 그 체제를 수용하고 충성을 다하겠다는 일종의 의식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설사 출사하지 않고 학문만 닦는다 하더라도 역모죄로 멸문지화를 입지 않으려면 대놓고 황제를 비판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현상은 중국으로부터 유학을 수입한 조선과 일본에선 더욱 심화됩니다. 조선에선 사림의 존경을 받는 학자가 관직 진출을 거부할 경우 왕에 대한 충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학맥과 인맥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붕당(朋黨)이라 쓰고 당파(黨派)라고 읽는 파벌정치가 판을 치게 됐습니다. 당론에 어긋나는 주장을 조금이라도 펼칠라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공론장에서 퇴출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사문난적이란 공자가 고대 성현으로부터 자신에게까지 이어진 예약의 전통을 ‘사문(斯文)’이라고 외친 것을 원용해서 그 ‘사문을 어지럽히는 도적’이란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일본에선 제후(다이묘)의 명이 떨어지면 항변 한마디 못하고 스스로 배를 가르고 자결해야 하는 문화(셋푸쿠)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전국시대는 백화제방이 이뤄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달리 주군과 사무라이의 수직적 종속관계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1866년 메이지유신을 추동한 사카모토 료오마는 자신의 번을 탈출해 자유롭게 떠도는 료닌(일정한 주군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이었기에 1000년 넘게 지속된 일본의 봉건제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한 폐번치현(廃藩置県)을 구상하고 단행할 수 있었습니다.


메이지유신 성공 이후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사설 함대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다가 서른셋에 암살당해 요절한 료마야말로 II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선(서양의 군함)을 접하고 도쿠가와막부 체제의 문제를 깨달은 뒤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막부, 번, 당파로부터 철저히 독립적인 사유를 펼친 결과를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으로 옮겨 성사시켰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면 도쿠가와막부의 최대 반대세력이면서 서로 앙숙이었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화해시켰고 그들과 손을 잡았지만 결코 그들과 당파를 만들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료마가 살해된 이후 일본이 길을 잃고 제국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탄압한 데서 발생합니다. 료마의 전통을 계승한 소수 자유주의 세력이 이에 저항했지만 군국주의자들은 텐노(일왕)의 이름으로 그들을 ‘불충한 무리’라고 공격했고 침묵시켰습니다. 그나마 미국의 일본 점령으로 군국주의자들이 잠시 패퇴하는 사이 자유주의 세력이 학계와 문단을 거점으로 삼아 II의 문화를 일궈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1억5000만이 넘는 인구 중 상당수가 그러한 지식인들의 책을 사서 읽어주는 독서문화도 한몫을 해줬습니다 . 일본 우익과 자민당 정부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쓰루미 슌스케,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같은 지식인들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입니다.


아쉽게도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런 II의 전통이 취약합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던 시기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이에 저항하는 일군의 지식인을 인텔리겐치아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지식보다 사회주의 노선과 당의 지시를 우선시하면서 급격히 그 독립성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중국은 1949년 이후 공산당과 국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고 한국은 군사독재정부에 저항하던 지식인의 상당수가 민주화 이후 어용 지식인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씨처럼 대놓고 어용 지식인이라고 밝히는 분이 아니더라도 주류 당파에 소속되거나 그를 지렛대 삼아 정부 고위직으로 진출한 지식인은 결코 II가 될 수 없습니다. 권력지향적인 폴리페서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한 군자는 21세기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높은 관직에 올라 우러름을 받는 입신양명을 포기하더라도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지식인. 백분토론 식의 논쟁을 위한 논쟁, 자신의 당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 소모적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문제의 본질과 대안을 찾는데 집중하는 지식인. 뜻이 같은 동지와 어울리되 권력획득을 목표로 삼는 특정 당파에 소속되지 않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정치권력화하지 않은 지식인. 그런 II가 많아지는 대한민국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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