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18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의로써 바탕을 삼고, 예로써 행하고, 공손으로써 드러내고, 신의성실로써 이루나니. 그래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자왈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한자문화권에선 고대에는 한 글자로 표현되던 개념이 후대로 오면서 두 글자 이상으로 바뀝니다. 한 글자로 쓸 경우엔 포괄적이되 모호하던 개념이 두 글자 이상으로 쓸 경우엔 구체적이고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논어’를 풀이할 때도 한 글자로 쓰인 개념을 두 글자 이상으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도 의(義) 예(禮) 손(孫) 신(信)이라는 한 글자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를 풀어낼 때 의와 예는 그대로 썼지만 손과 신은 각각 공손과 신의성실로 풀었습니다. 앞의 두 개념은 ‘논어’의 핵심을 이루는 덕목인 반면 손과 신은 보완적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석서에선 이 네 가지 덕목을 동등하게 취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말씀 대잔치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네 덕목은 동등하지 않습니다. 지시대명사 지(之)가 가르치는 것이 첫 번째 등장하는 의로 새기는 것이 맞다 보기 때문입니다. 예로써 행하고, 공손으로써 드러내고, 신의성실로써 이뤄야 하는 것이 곧 의로움이라는 말입니다.
자, 이 경우 2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첫째 공자가 가장 강조한 덕목인 인(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둘째 맹자가 말한 사단(인의예지)에서 의와 예는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동중서가 제창한 오상(五常)에선 의와 예뿐 아니라 신(信)까지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의문부터 풀어가겠습니다. 앞서 ‘군자 vs. 도덕군자’에서 살펴봤듯이 인의예지는 결코 동등하지 않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도덕심성론으로 심화‧축소시킨 맹자 역시 인과 의가 바탕이 되고 예와 지는 그 토대 위에 발현된다고 밝혔습니다. 그 가르침을 다시 한무제 때 충효를 앞세운 국가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킨 동중서의 오상은 인의를 중심으로 삼은 유학의 근본가치를 당시 유행하던 황로학의 음양오행설에 맞춘 것에 불과하니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의가 목적어가 되고 예, 손, 신이 종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시 첫 번째 의문으로 돌아가면 인과 의는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 걸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은 도와 덕이 인간세상에서 합치된 덕목입니다. 객관적 세계(우주)의 원리인 도와 주관적 내면의 그릇인 덕이 하나 돼 인간세상(사회)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리더십을 통칭합니다. 그렇다면 어짊으로 번역된 그 인과 차별화되는 의는 무엇일까요?
의로움, 합당함, 올바름, 정의로 번역되는 의는 인의 대상이 된 인간세상의 또 다른 객관적 원리입니다. 인간세상은 객관적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상호주관적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연법칙과 또 다른 객관적 인륜질서를 지칭하는 개념이 곧 의(義)입니다. 주관적 덕에 침윤된 객관적 도가 곧 의인 것입니다. 반대로 객관적 도에 침윤된 주관적 덕을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와 덕만을 놓고 보면 도가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세계가 아닌 인륜 세계로 범위를 좁히면 객관적 도보다는 주관적 덕이 우위에 있게 됩니다. 그것이 곧 인입니다. 그런 인륜적 세계에서 객관적 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도가 덕에 선행하고 우위에 있지만 그것이 인륜세계에 적용될 때는 주관적 덕의 요소가 더 강한 인이 우위에 서고 개관적 도의 요소가 강한 의가 그 토대를 구축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도덕에선 객관적 도가 우위에 서지만 인의에선 주관적 인이 우위에 섭니다.
따라서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의는 인륜세계의 객관적 측면을 지배하는 최고 덕목입니다. 요즘 용어로 말하면 사회윤리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변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복수법칙의 절대성이 중시됩니다. 또 춘추전국시대에는 대부 이상의 고위 관료에게는 덕치, 그보다 못한 하위 관료와 일반인에겐 법치를 적용하라는 상대주의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법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는 보편적 법치주의가 강조됩니다.
그만큼 인륜세계의 객관성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에 비하면 상대적이고 가변적입니다. 하지만 특정지역의 특정 시대 사람에게는 절대적 법칙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인은 그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그래서 의의 허를 찌르고 들어갑니다.
대표적 사례로 절영지연(絶纓之宴)의 고사를 들 수 있습니다. 춘추오패의 하나로 꼽히는 초나라 장왕(莊王)이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를 연 자리에서 일진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집니다. 그 어둠을 틈타 장수 중 하나가 초장왕 애첩의 몸을 더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애첩은 기지를 발휘해 그 장수가 쓴 관모의 끈을 잡아채 끊어냈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켜서 참석자들의 갓끈을 확인하면 무례를 범한 장본인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맹자가 수오지심(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밝힌 의의 영역입니다.
그 순간 최고 주권자인 초장왕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촛불을 다시 켜기 전에 모든 참석자에게 갓끈을 끊어내라고 명합니다. 술기운에 실수를 범한 그 장수가 처한 곤경을 면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곤경을 면한 그 장수는 훗날 전쟁터에서 위기에 처한 초장왕의 목숨을 구합니다. 이것이 맹자가 측은지심(타인을 불쌍히 여기고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말한 인의 영역입니다.
군자는 무엇보다 인을 최우선으로 실천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과 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요? 초장왕의 사례처럼 군자 자신이 직접 연관된 문제에 대해선 주관적 인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제삼자인 상황에서 백성과 백성 간의 문제, 또는 대부와 백성 간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객관적 의의 원칙에 입각해 판결과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걸 위반하고 자신의 자의적 주관을 개입시키는 순간 인륜과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공자가 이 장에서 바탕으로 삼으라고 말한 의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