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토론은 토크쇼가 아니다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여럿이 종일토록 함께 있으면서 의로움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조차 없이 소소한 재주 겨루기만 좋아한다면, (깨달음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子曰; “群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

자왈 군거종일 언불급의 호행소혜 난의재



어떤 장면이 생각나십니까? 저는 오늘날의 TV 집단 토크쇼가 떠오릅니다. 연예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사람들 웃음을 끌어내기 바쁩니다. 사람들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조차 자신의 체험담 인양 꾸며대곤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말끝을 물고 늘어지면서 재기 발랄함을 뽐내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기 급급합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예능을 왜 다큐로 받고 있어?”라면서 면박주기 일쑤입니다. 어쩌다 가끔 올바름이나 의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도 면피용이다 보니 너무 뻔하고 통속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집단 토크쇼의 방송 분량은 1,2시간이지만 그걸 촬영하는 데는 하루 종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시청자 처지에선 하루 중 한두 시간 낄낄 웃고 넘어가면 그뿐이라지만 일주일에 그런 토크쇼를 두어 개씩 촬영하는 연예인 처지에선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공자가 소혜(小慧)라고 부른 재치만점의 재담을 한껏 펼쳤다한들 그것이 우리네 인생과 공동체 생활에 의미 있는 그 무엇을 끌어내는 성취감을 안겨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능프로그램 말고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TV 정치토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특정 이슈에 대해 찬반으로 뚜렷이 입장이 나뉜 사람들끼리 성대한 말잔치만 벌입니다. 그 토론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거나 새로운 돌파구가 될 대책을 찾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신들의 진영논리를 결사 옹위하기 위해 소혜를 짜내고 발휘하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그런 집단사고에 감염돼 사고가 경직되기 일쑤입니다. 그 이슈에 대한 자신의 초기 입장을 철회하거나 새로운 통찰을 얻어가는 경우를 기대하기 난망인 이유입니다. 공자가 “어렵도다!”라고 장탄식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절로 공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표현은 ‘군거종일(群居終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놓고 하루 종일 회의하게 해 봐야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나 제안이 도출되는 경우를 못 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그러한 회의는 그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알리바이 조성용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모여서 결정한 것이니 최종 책임을 내게 묻지 마라’는 면책용 집단사고를 주입하려는 목적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괜히 무리 지어 하루 종일 왈가왈부할 시간에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학이사(學而思)’를 해야 합니다. 관련 자료를 끌어 모아 분석하고 거기서 어떤 통찰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저마다 독립적 지식인이 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고민해보고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리고선 최단시간의 집단토론을 통해 서로의 것을 견줘본 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수결로 결정하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소혜를 겨루는 재미에 푹 빠져들거나 해묵은 감정싸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소아병이 퍼지지 않도록 자신과 상대방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견제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 유머감각까지 희생시키라는 말은 아닙니다. 원활환 회의 진행을 위해 발휘되어야 할 유머감각은 상대방 주장의 약점과 단점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약점과 단점을 드러내는 자기풍자 형식이 될 수 있는 배려심이 필요합니다. 그 게임의 법칙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웃겨라,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먹잇감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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