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댈 알아주지 않더라도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9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자신의 무능을 아파하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아파하진 않는다.”


子曰: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자왈 군자병무능언 불병인지불기지야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은 것 때문에 성내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논어’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등장합니다. 그만큼 공자는 이름에 집착하는 것, 명성을 추구하는 것, 인정욕망에 시달리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3가지 이유를 떠올려봅니다. 첫째 이름과 실제가 따로 노는 걸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왕이면 왕다워야 하고, 제후면 제후다워야 하고, 대부면 대부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을 때 공자의 답변,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12편 안연 제11장)’ 역시 그런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과거의 질서와 규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와 규칙이 모색되던 혼란기였습니다. 공자는 그 혼란기를 과거 좋았던 시절에 제정된 질서와 원칙의 회귀로 돌파하고자 했습니다. 질서와 원칙이 예(禮)입니다. 또 공자가 생각한 회귀는 과거의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그 예가 제정된 내용에 충실하되 형식은 현실에 맞춰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2편 위정 제11장)이 이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둘째 공자는 없는 말까지 지어내가며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교언영색과 곡학아세를 싫어했습니다. 교묘한 말과 가식적 낯빛으로 윗사람의 심기를 맞추는 교언영색과 배움을 왜곡해 세상에 아부한다는 곡학아세는 명색이 배운 사람들이 윗사람의 심기를 호릴 때 쓰는 기술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윗사람에게 잘 보여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함이니 곧 입신출세를 위함입니다. 그렇게라도 입신출세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사람의 선망을 받고픈 욕망 때문입니다. 그렇게 명성을 추구하는 출세욕이 올바른 정치로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군자를 타락하게 만듭니다. 공자가 그토록 이를 경계한 이유입니다.


셋째 공자의 삶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입신출세에 실패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50대 초반 몇 년간 차관급 이하인 하대부에 발탁된 것이 그의 관직 경력의 전부이며 이후 14년간 천하를 떠돌며 자신을 기용해줄 제후를 찾아다녔으나 ‘상갓집 개’ 신세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처절한 실패를 맛봤습니다. 다행히 자신이 아니라 출세한 제자들 덕분에 본국인 노나라로 귀향은 했지만 78세로 숨질 때까지 어떤 공직도 맡지 못했습니다.


공자 자신이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차례 토로했습니다. 모시던 주군에게 반기를 든 필힐(胇肹)의 초청에 응하려도 했고, 위령공의 부인으로 남자관계가 문란했던 남자(南子)를 독대해서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자신의 뜻과 재주를 알아봐 주는 제후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공자의 이런 안타까움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내고 괴로워하는 것”을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공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의 진가를 몰라주더라도 세상을 등지거나 욕하지 마라. 잠시 잠깐 좌절하고 슬플지언정 세상에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말지니. 이렇게 모욕과 좌절을 견디며 평생을 살아낸 나 같은 사람도 있음을 기억하라. 비록 살아있는 동안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더라도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결코 세상을 등지거나 욕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마라.’


이런 공자의 마음을 대변한 시가 있습니다. 과거 이발소에 가면 키치 그림과 함께 붙어있던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제목과 첫 연을 ‘세상이 그대를 알아주지 않더라도’로만 고치면 고스란히 공자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는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시킨의 이 시는 러시아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에서 사랑받아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저는 공자의 가르침이 한국인의 심성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1000년 넘게 공자를 성인으로 받는 나라였기에 공자의 가르침이 무의식에 깊이 박혀있어 그에 절묘하게 공명하는 푸시킨의 시 또한 사랑받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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