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아프니까 군자다!

15편 위령공(衛靈公) 제20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상이 기울어가는 것과 명칭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아파한다.”


子曰: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자왈 군자질몰세이명불칭언



대부분의 주석서는 이 장을 이렇게 새깁니다. “군자는 종신토록 자신의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너무 속물적이지 않나요?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내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논어’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등장합니다. 1편 학이 제1장과 제16장, 4편 리인 제14장, 14편 헌문 제30장과 제35장, 15편 위령공 제19장(이 장의 바로 앞장)입니다. 인정욕망에 대한 집착을 그토록 경계했던 공자가 여기선 다시 이름을 드날리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은 도통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몰세(沒世)는 ‘죽을 때까지 평생’이라는 뜻도 있지만 ‘기울어가는 세상’이란 뜻으로도 새길 수 있습니다. 또 명부칭(名不稱)은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고 새길 수 있지만 명나라 때 양명학을 창시한 왕양명처럼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 둘을 합치면 군자가 근심 걱정하고 아파하는 것(疾)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세상이 기울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면서 이름이 실제에 부합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의 상관관계를 드러내면서 “세상이 기울어가면서 명칭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군자라면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사람들 입에 오르느냐 않느냐를 두고 마음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헛된 명성에 연연하기보다는 올바른 길을 깨치는 수제(修齊)와 백성의 짐을 덜어주는 치평(治平)을 실천하느냐 마느냐를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땅히 세상이 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에 뼈아픈 신음을 토해내야 합니다. 또 온갖 미사여구로 병들고 부패한 현실을 가리는 것에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보통사람인 소인에겐 그게 참 피곤한 일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와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일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살기에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결코 그걸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소인은 군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인에게 어진 덕을 베풀고 바른 길을 제시해주기로 결심한 군자라면 세상이 타락하고 명분과 실질이 따로 노는 것을 간과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몸이 병들고 고통받는 것과 똑같이 아파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북송의 문인이었던 범중엄은 두보의 시 ‘등악양루’로 유명한 악양루의 중건을 기념해 쓴 ‘악양루기’의 말미에 이런 구절을 썼습니다. ‘천하가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 '먼저 걱정하고 나중에 기뻐한다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이 장의 메시지와 절묘하게 공명하는 표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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