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추상과 내로남불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자신을 책망할 때 두터이 하고 타인을 책망할 때 엷게 하면 원망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자왈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명나라 때 관료들의 처세술을 모아서 정리한 ‘채근담’에도 동일한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좀 더 세련된 표현이라 더 많이 인용됩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나긋하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매섭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으로 변용돼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에겐 부드럽게, 나에겐 엄격하게‘라는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줄여서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사자성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공자가 이런 말을 남긴 이유는 현실에선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해지기 쉽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넉자로 줄여서 ‘내로남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2년 차이던 2018년 고 신영복 선생의 ‘春風秋霜’ 글씨가 적힌 액자를 청와대 비서관실마다 선물했습니다.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국민에겐 겸손한 자세로 봉직하라는 취지로 내려 보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8월 청와대 사정수석으로 있다가 법무장관으로 영전한 조국 씨의 이중 잣대 논란이 불거진 끝에 결국 취임 35일 만에 낙마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내로남불 정부’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심지어 미국 뉴욕타임스조차 2020년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naeronambul이란 한국어 발음을 따른 영어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토록 춘풍추상을 내세웠던 정부가 그 반대의 메시지가 담긴 내로남불 정부로 불리게 된 아이러니가 빚어진 것입니다.


21세기 한국 정치현실에서 벌어진 이 현상이 말해주는 것이 뭘까요? 춘풍추상이란 말은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내로남불이라며 남을 비판하기 쉬워도 스스로가 내로남불을 저질렀다면서 반성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자 말씀을 따르기 위해선 거창하게 "춘풍추상을 실천하겠다"는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그냥 "내로남불만 안 하고 살겠다"고 약속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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