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색을 말하였는가?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끝내 안되는구나! 내 아직 덕(德)을 좋아하기를 색(色‧미모)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자왈 이의호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



‘논어’에는 덕(德)과 색(色)을 대조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두 차례나 등장합니다. 9편 자한 제18장에선 ‘끝내 이루지 못했다’는 뜻의 감탄사 '이의호(已矣乎)'만 뺀 채 똑같은 내용이 되풀이해 등장합니다. 주자 이후 수많은 사람들은 색을 여색(女色)으로 풀었습니다. 덕을 쌓는 군자라면 마땅히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도덕주의적 해석입니다.


‘논어’에서 색(色)을 여색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장이 2개 더 있습니다. 하나는 보통 ‘현자 좋아하기로 여색 좋아하기를 대체하라’(賢賢易色)’로 새기는 자하의 발언이 소개된 1편 학이 제7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젊을 때는 아직 혈기가 안정되지 못했으므로 성관계를 경계해야 한다(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는 공자 발언이 등장하는 16편 계씨 제7장입니다.


이를 여색으로 번역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 관점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남녀평등을 위해서라도 여색보다는 성관계나 성애로 풀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色=sex로 풀면 남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왜 하필이면 덕의 대척점에 있는 걸로 sex를 상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가만 보면 이들 4개 장에선 모두 여색(女色)이란 직접적 표현을 쓴 게 아니라 그냥 색(色)으로만 표기돼 있습니다. 색을 꼭 여색으로 풀어야 할까 싶어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 보니 ‘논어의 발견’과 ‘새번역 논어’을 쓴 이수태 씨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색을 여색이란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은 전국시대 들어와서이며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불가의 용어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색(色)의 개념처럼 '보임새(外觀)'라는 뜻으로만 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논어’에는 色(색)이라는 글자가 27번에 걸쳐 나오는데 그 대부분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경우처럼 얼굴빛, 외모, 겉모습으로 풀면서 유독 앞서 제가 말한 네 장에서만 여색(女色)의 뜻으로 푸는 것은 후대의 착종이라는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도 이를 여색으로 번역하지 않고 겉모습이나 아름다운 외모로 풀어내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리쩌허우(李澤厚)의 ‘논어금독’을 찾아보니 15편 위령공 제13장과 9편 자한 제18장의 색은 미모(美貌)로 풀어냈습니다. 또 1편 학이 제7장의 賢賢易色은 ‘용모를 중시하는 생각을 덕행을 중시하는 생각으로 바꾸고’로 새겼습니다. 다만 16편 계씨 제7장의 색은 ‘성관계’로 해석했습니다.


이수태 씨는 16편 계씨는 후대의 위작이 많다는 학계의 분석을 토대로 제7장 역시 전국시대 이후 후대의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계씨 편 제7장이 위작이냐 아니냐는 고전 텍스트로서 ‘논어’를 다루는 데 있어선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위작이라 하더라도 2000년 넘게 정본으로서 다뤄져 왔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봐도 sex를 뜻하는 계씨 편 제7장을 제외하고 다른 3개장의 색을 여색으로 해석하는 것과 미모나 용모로 해석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더 적절하냐입니다. 덕은 타인을 담아내는 내면의 그릇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대조적 개념으로서 색은 그럴듯한 겉모습(미색‧美色)으로 풀어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호덕(好德)이 융숭 깊은 내면을 갖추는 것에 심취한 것이라면 호색은 아름다운 겉모습에 빠진 것을 뜻합니다. 賢賢易色 역시 ‘여색 대신 현인’보다는 ‘외모보다 현명함’으로 새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공자가 진실로 좋아했던 ‘시경’에 실린 삼백수의 시는 대부분 사랑 노래입니다. 남녀 간에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성욕을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이 태반입니다. 그런 사랑노래를 어여삐 여겼던 공자가 굳이 덕을 좋아하는 것과 성(性)을 좋아하는 것이 상반된다고 생각했을까요?


공자가 경계한 것은 결코 섹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부부간의 의리를 깨고 불륜에 빠지거나 애첩의 미모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표현을 빌리면 섹스가 아니라 섹스중독을 경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심지어 계씨 편 제7장에서 경계한 것 역시 젊은 날의 과도한 성관계였습니다.


게다가 공자는 무척 점잖은 사람이었습니다. 6편 옹야 제26장에는 공자가 위령공의 부인으로 미색이 뛰어나 여러 스캔들을 몰고 다녔던 남자(南子)를 독대했던 일로 수제자 자로로부터 추궁을 받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이때 공자는 정색하면서 “만일 조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면 하늘이 나를 벌주실 것”이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제자들에게 덕을 강설하면서 굳이 섹스 얘기를 들먹였을까요? 옷깃조차 스치지 않은 인연 하나로 인해 온갖 억측에 시달렸던 공자로선 오히려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주자 등의 후학들은 남자와 만났던 사건 때문에 공자가 여색을 경계하는 발언을 내놨을 것이라는 뇌피셜 정신분석을 늘어놨습니다. 공자로선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설사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됐다 해도 공자는 그런 이유로 성욕 자체를 혐오하는 졸장부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송나라 때 유학자들은 선불교에 맞서 유교를 성리학으로 재구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가한 승려의 금욕주의에 맞서기 위해 사대부 역시 그에 버금가는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존재로 형상화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공자를 졸지에 성 자체를 사갈시 하는 사감선생처럼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불가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노승과 젊은 승려가 탁발에 나섰다가 물이 가슴팍까지 불어난 강물을 건너게 됐는데 마침 젊은 처자도 강을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노승이 이를 딱하게 여겨 처자를 업어서 강 건너로 데려다줍니다. 젊은 처자의 옷이 강물에 젖어 노승의 몸에 착 달라붙은 것을 본 젊은 승려는 망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넌 뒤 처자와 헤어지고 한참을 걸어가다 노승에게 “여색을 멀리해야 할 승려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노승은 씩 웃으면서 답합니다. “나는 강을 건너자마자 처자를 내려두고 왔는데 너는 그 처자를 가슴속에 품고 여기까지 왔구나!”


공자와 주자 중에 누가 노승이고 누가 젊은 승려일까요? 공자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것에 대해 색(色)이라고 표현했건만 주자를 필두로 한 신유학자들은 하나같이 이를 여색(女色)으로 봤습니다. 누가 더 여색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요? 현진건의 단편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의 주인공 B사감처럼 과도하게 남녀 간의 사랑 자체를 억압하다가 오히려 주화입마하게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기독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예수는 외식을 경계했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마태복음 6장 5절)거나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태복음 7장 5절) 등의 구절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외식은 한자로 外飾, 곧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이니 공자가 경계한 호색(好色)과 공명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국내 기독교 신자 중에서 이를 外食으로 오해하고 집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것을 무슨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공자가 말한 호색을 여색(女色)으로 못 박아 해석한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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