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3단계 국가전략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 근심이 있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자왈 인무원려 필유근우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전한 최고의 천재 유학자로 평가받는 가의(賈誼‧기원전 200~기원전 168)가 천하일통을 이룬 진나라가 15년 만에 망한 이유를 분석한 ‘과진론(過秦論)’이란 책에 처음 등장한 표현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룩한 이유로 ‘깊은 계책과 원대한 생각, 행군하고 용병하는 방법이 지난날의 책사와 비교할 바 없이 뛰어났기 때문(深謀遠慮, 行軍用兵之道, 非及曩時時之士也)’이라고 밝힌 대목입니다.


가의 보다 350년 전 사람인 공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서 장기계획을 세우고 그에 입각해 운영하지 못하면 결국 근심 걱정거리만 계속 키우게 된다는 것이지요. 노나라는 그런 공자에게 국가운영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하던 대로 공실의 일환인 삼환에게 맡겨뒀다가 결국 기원전 256년 전국 7웅 중 남방의 강대국인 초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합니다. 주공 단의 아들 백금이 노나라 종실을 세운 지 742년 만이자 공자가 죽고 난 뒤 223년 만입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한 원려(遠慮)를 요즘 정치용어로 말하면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입니다. 주변국의 침략을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인구를 늘이고 재화를 축적해 국력을 신장시키는 장기적 계획입니다. 그럼 공자 당시 노나라의 국가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춘추전국시대 국가전략으로 소진(蘇秦)이 주창한 '합종(合從)'과 장의(張儀)가 내놓은 '연횡(連橫)'이 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서쪽의 진(秦)나라와 동쪽의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 여섯 나라, 이렇게 7개의 강대국이 경합합니다. 이중 가장 강대국이 진인데 소진은 동쪽에 종으로 늘어선 여섯 개 국가가 연합해 진나라에 맞설 것을 주창합니다. 강대국에 맞서 약소국이 동맹을 맺는 것이니 오늘날의 균형 동맹(balancing alliance)에 해당합니다. 반면 소진과 동문수학하다가 진나라 객경이 된 장의는 어차피 진나라가 최강국이니 진과 동맹을 맺어 천하를 나눠 갖는 것이 좋다고 주장합니다. 강대국의 편에 서서 그 수혜를 나눠가지는 편승 동맹(bandwagoning alliance)입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왈트에 따르면 약소국 처지에선 균형 동맹 또는 합종이 유리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대부분 편승 동맹 또는 연횡을 택해왔다고 합니다. 실제 전국시대의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위 조 연 제 초 6국은 한때 소진의 말을 쫓아 합종을 꾀하지만 결국은 진나라 승상이 된 장의에 감언이설에 넘어가 연횡에 매달렸고 결국 진나라에 의해 각개 격파되며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노나라는 약소국에 속했습니다. 따라서 송나라, 위(衛)나라, 채나라, 진(陳)나라 같은 주변 약소국과 균형 동맹을 맺어서 강대국인 제나라, 진(晉)나라, 초나라, 오나라 등에 대항하는 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후의 힘이 약했던 데다 국정의 책임자인 삼환 역시 노나라를 넘어서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만큼의 정치적 도덕적 지도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약소국의 구심점 역할을 맡아 균형 동맹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불안한 국내 세력기반을 지키기 위해 제나라나 진나라, 오나라로 대상을 바꿔가며 균형 동맹을 맺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대를 바꿔가며 동맹을 맺다 보니 동맹이 파기된 이전 강대국의 보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자는 이런 식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3단계의 국가전략을 구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사람들을 포용하는 덕도 부족하고 쌓은 공도 없으면서 순전히 부모 잘 만난 덕에 노나라 상경의 지위를 독점해온 삼환 세력을 축출하고 주변 약소국이 모두 믿고 따를만한 리더십을 새로 구축하는 겁니다. 둘째 주나라 예악의 기초자이자 완성자로서 주공의 정통성을 계승한 노나라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삼환을 대체할 노나라의 새로운 리더십이 예약에 정통한 인물이 돼야 합니다. 셋째 이를 토대로 송, 위, 채, 진과 같은 약소국의 연맹체를 구성하고 제후들의 회맹에서 제, 진, 초, 오 같은 강대국 제후들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제압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자신이 그런 새로운 리더십을 수행할 자질과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단계 구상의 첫 단추로 삼환의 근거지인 비읍, 후읍, 성읍의 성벽을 허물게 하는 소위 ‘삼도도괴(三都倒壞)’를 추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마지막 순간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공자를 경계한 제나라가 노나라의 예약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인계(여성 가무악단의 파견)로 공자의 위상이 추락해 결국 노나라를 떠나게 되고 말았습니다. 노나라 내부의 지지기반 부족으로 공자의 3단계 구상 중 1단계와 2단계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렸고 당연히 3단계로 비상할 기회마저 철저히 차단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노나라에서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데 실패한 공자는 궤도를 수정합니다. 굳이 노나라가 아니더라도 위, 진, 송, 채처럼 노나라와 비슷한 약소국의 상경이 되어 약소국의 균형 동맹을 구축하려고 한 것입니다. 1단계를 포기하더라도 2단계와 3단계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은 주문왕과 주공으로 계승된 예악의 소프트웨어를 자신이 계승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공의 정통성을 계승한 노나라라는 하드웨어 없이도 자신의 주도 하에 일종의 연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14년의 풍찬노숙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상경으로 기용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자의 3단계 국가전략 역시 청사진으로만 그치게 된 것입니다. 아쉽게도 공자의 죽음과 함께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처절한 약육강식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그로 인해 노나라나 공자가 노나라의 쌍둥이라 여겼던 위나라 같은 약소국은 그 존립 자체마저 힘겨운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구상했던 약소국 연맹체는 무의미해지고 전국 7웅으로 불리게 된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만이 중요해짐에 따라 합종연횡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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