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거울, 안연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1장

by 펭소아

안연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역법을 쓰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의관을 입고, 음악은 순임금 때 만든 소라는 무곡을 쓰라. 정나라 음악을 물리치고, 아첨하는 인간을 멀리해라. 정나라의 음악은 상스럽고, 아첨하는 인간은 위험하다.”


顔淵問爲邦.

안연문위방

子曰: “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 樂則韶舞,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자왈 행하지시 승은지로 복주지면 악즉소무 방정성 원녕인 정성음 영인태



드디어 공자의 최애 제자 안연이 등장했습니다. 예수 제자 중에서 세 인물만 꼽으라면 피터(베드로), 폴(바울) & 매리(막달라 마리아)가 있으니 각자 가장 충직한 제자, 가장 똑똑한 제자, 가장 사랑스러운 제자를 대표합니다. 공자 중에서 그 셋을 꼽으라 하면 자로, 자공, 안연이 될 것입니다. 자로는 수제자, 자공은 전법 제자, 안연은 애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연(晏淵)은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으로 본명이 회(回), 자는 자연(子淵)입니다. 같은 자를 쓰는 제자가 있어서인지 ‘논어’에서는 안연으로 불립니다. 공자보다 30세 적지만 제(弟) 계열 제자로 분류되며 자공과 동년배였습니다. 수제자라 할 자로보다는 스물한 살 어렸으니 공자 나이 지천명(50세) 전후에 입문한 제자로 추정됩니다.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불혹의 나이에 숨졌는데 가장 아끼던 제자의 요절에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고 거듭 통탄합니다. 공자가 절절히 애통해한 죽음이 셋 있었으니 안연과 외아들 백어, 수제자 자로의 죽음이었습니다.


실제 ‘논어’에 등장하는 제자 중에서 안연만큼 공자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많이 받은 인물이 없습니다. 공자가 뽑은 공문십철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혔으며 덕행이 높다고 평가받은 네 제자 중에서도 단연 선두였습니다. 집안이 엄청 가난하여 굶기를 밥 먹듯 했지만 친구인 자공에 따르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고”, 스승인 공자에 따르면 호학(好學)과 덕행(德行)에 있어 공자 자신을 능가하는 제자였습니다.


안연은 똑똑하기로 자공을 능가할 뿐 아니라 덕행에 있어서도 스승이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인물이었으니 공문에서 감히 그와 견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직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하고 요절했기에 더욱 흠잡을 데 없는 인물로 추앙받게 됐습니다. 실제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서 공자 다음의 위상을 차지합니다.


공자의 위패 아래 4자(四子)라 하여 별도로 4명의 성인 위패를 모십니다. 그 순서가 안자(안회) 증자(증참) 자사자(자사) 맹자(맹기)입니다. 주희의 도통론에 입각한 배치입니다. 안자의 시호는 복성(復聖), 증자의 시호는 종성(宗聖), 자사의 시호는 술성(術聖), 맹자의 시호는 아성(亞聖)입니다. 안연의 시호가 복성인 이유는 ‘논어’에서 어짊에 대해 묻은 안연에게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한 12편 안연 제1장의 내용의 복을 강조하는 동시에 공자와 겹쳐서 온 성인이란 뜻으로 쓴 것입니다.


‘논어’에서 안연의 질문은 주로 덕행과 관련 있기에 수제파 내지 내성파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여기선 나라를 다스리는 위방(爲邦)에 대해 묻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제도의 실천으로 답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예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쓰라는 것입니다. 하나라 때 농사짓기에 좋게 채택한 태음력의 역법을 쓰고, 은나라 때 화려함을 배제하고 질박한 실용성을 강조한 수레를 쓰고, 주나라 때 그 신분에 따라 다섯 종류의 면류관을 쓰도록 한 주나라의 의복을 채택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은주 3대와 천지인(天地人) 3재를 절묘하게 접목해 예(禮‧제도와 문물)를 풀어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다음으로 악(樂)이 등장하는데 공자가 제나라에서 그 실체를 접하고 한동안 고기 맛을 잊게 만들었다는 소(韶)라는 무곡을 제례악으로 쓰라고 권합니다. 이는 하은주보다 앞선 순임금 때의 음악입니다. 다음으로 당시 가장 유행하던 정나라의 음악인 정성(鄭聲)을 쓰지 말라면서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순정하게 다스리는 음악이 아니라 선정적으로 부채질하는 음악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는 바로 용인술과 이어지니 아첨하는 인간을 기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공자의 답변을 구조화시켜보면 그 제도(禮)는 하늘, 땅, 사람에 부합하는 원리를 채택하라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모두 인(人)에 초점을 맞춘 심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간 조화에 초점을 맞춘 악(樂)은 순임금 때 음악을 쓰라하면서 당대 유행하던 정나라의 음악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로 선정성을 꼽습니다. 세속에서 유행하는 음악은 오락성이 강조되지만 국가 제례악의 경우엔 백성을 정화시키고 화합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결국 인재 등용의 문제로 귀결되니 “아부꾼(佞人)을 멀리하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공자의 답변에서 그의 감정선이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앞에선 차분하게 긍정적 제도를 나열하다가 뒤로 갈수록 염오와 부정의 감정이 커집니다. 여기서 세상과 불화했던 지식인으로 인간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좋은 정치, 어진 정치를 펼치기 위해 고금의 예악을 연구하고 그 정수를 터득했건만 세상에서 배척받는 신세가 된 것에 대한 울분이 알게 모르게 터져 나온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되풀이해 강조했건만 공자 역시 인간이었기에 그걸 실천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진짜 매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공자는 결코 지극한 성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경지에 가까운 사람은 제자인 안연이었습니다. 안연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했습니다. 공자는 그런 안연이 처음엔 멍청한 건가 의심했고 몰래 안연의 집을 찾아가 그가 자신의 가르침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하는 것을 보고 경외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 자신도 지키기 어려운 것을 안연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묵묵히 삶 속에서 관철해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안연은 공자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행일치를 강조했던 공자에게 과연 그 말대로 살고 있는지를 비춰주는 존재. 안연에게 위방에 대해 말하고 난 뒤 공자는 부끄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지불식 중에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안연의 본명이 돌아올 회(回)이며 그 시호가 돌아볼 복(復)을 써서 복성이라고 한 것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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