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爲仁)과 위방(爲邦)

15편 위령공(衛靈公) 제10장

by 펭소아

자공이 어짊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기술자가 그 일을 잘하려면 우선 연장을 예리하게 벼려둬야 한다. 한 나라에 살게 되면 그 나라의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을 섬기고, 어진 선비와 사귀어야 할 것이다.”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

자공문위인 자왈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 거시방야 사기대부지현자 우기사지인자



어짊(仁)은 인격적 덕을 쌓는 수제(修齊)와 공동체 운영의 도를 터득하는 치평(治平)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천하의 백성을 품에 안고 그들의 삶을 걱정하고 돌보려는 마음을 갖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덕목이 곧 어짊인 것입니다. 자공이 그 어짊을 어떻게 해야 실천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자공이 누구입니까? 공문에서 수완 좋기로 으뜸이고, 사람 보는 눈 정확하기로 첫째가는 사람입니다. 동년배인 안연이 수제에 출중한 덕(德)의 화신이라면 자공은 치평에 능란해 큰 공(功)을 세울 준재입니다. 삼불후(三不朽)에 비견한다면 입덕(立德)에 있어선 안연에 뒤처질지언정 입공(立功)과 입언(立言)에 있어선 훌쩍 앞서는 인물입니다.


그런 자공에게 어짊을 실천한다는 위인(爲仁)은 곧 벼슬자리로 나아가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매우 구체적 길을 제시해줍니다. “한 나라에서 가장 현명해 보이는 대부를 섬기며 그의 어진 사인들을 두루 사귀어 두라"는 것이 곧 든든한 동아줄을 붙잡고 좋은 인맥을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를 기술자가 연장을 날카롭게 벼려두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둘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요? 어진 정치를 펴기 위해 필요한 연장이 뭘까요? 좋은 인재(人材)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자신을 끌어주는 선배도 있어야 하고 뜻을 같이할 동료도 있어야 하고 실행을 책임질 후배도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인재 풀을 대거 확보할 수 있을까요? 공자의 답은 그에 대한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가 담겨 있습니다.


자공을 이익이나 탐하는 장사꾼 취급한 주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주석서는 자공이 어짊이 부족하기에 어진 대부와 어진 사인을 많이 사귀라고 조언했다고 풀어냅니다. 오독입니다. 자공은 말솜씨가 뛰어난 만큼 사교성도 뛰어났습니다. 공자는 그런 자공의 장점을 십분 살리기 위해서 먼저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11장에서 안연이 물은 위방(爲邦)과 10장에서 자공이 물은 위인의 차이입니다. 수제학의 관점에서 ‘논어’를 읽다 보면 나라를 다스린다는 위방은 치평이요, 어짊을 실천한다는 위인은 수제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답이 말해주듯 그 둘은 ‘정치행위를 한다’는 하나의 뜻으로 모아집니다. 인은 수제와 치평이 교차할 때 발생하는 덕목을 지칭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공자의 답을 두고 보면 위방과 위인은 똑 부러지게 일치하진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세 가지 답변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동일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자가 안연과 자공으로 달랐기에 공자가 맞춤형으로 답해서라는 겁니다. 안연은 일국의 재상(상경)이 될 만한 그릇이기에 국가의 제도를 수립하는 큰 그림으로 답했고 자공은 장관급인 대부 정도의 그릇이라 생각하여 어떻게 벼슬길을 열어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디테일부터 풀어줬다는 설명입니다.

둘째는 위방이란 표현 자체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일반적 뜻보다는 ‘나라를 만들어간다’는 좀 더 거창한 의미가 담겼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위인은 ‘어진 정치를 행한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로는 안연이 질문할 때는 정치에 바로 참여할 의사가 있었던 게 아니라 “과연 좋은 정치제도는 뭘까”라는 호기심이 강했고 자공이 질문할 때는 “정치에 입문하려면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라는 속내가 있음을 공자가 간파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3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공과 안연의 질문은 그 형식으로 봤을 땐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공자는 그 질문을 던진 두 제자의 속내를 읽어내고 위인과 위방이란 표현의 차이를 증폭시키면서 맞춤형으로 차별화된 답을 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두 사람의 그릇의 크기가 달라서라는 첫 번째 이유는 수정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만큼 호학했던 안연이 이론적 관심이 풍부했다면 구체적 문제 해결에 능했던 자공은 그만큼 현실적 관심이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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