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쌓기를 도닦기보다 기피하는 이유

15편 위령공(衛靈公) 제4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중유야!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子曰: “由! 知德者鮮矣.”

자왈 유 지덕자선의



되풀이해 말씀드리지만 도는 인간사회를 포함해 천하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요, 덕은 그런 만물 중에서도 생령(生靈)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내 안의 품의 크기를 말합니다. 천하 만물이 생겨난 뒤 인간이 생겨났으니 도가 먼저고 덕은 그다음입니다. 도를 깨치는 것은 사회과학을 포함한 과학의 영역이라면 덕을 확장하는 것은 도덕과 윤리의 영역입니다.


공자가 주창한 어짊(仁)은 이런 도와 덕을 포괄하는 덕목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이때의 도는 국가공동체가 돌아가는 정치원리에 대한 이해(치평)를 말하고, 덕은 그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백성을 얼마만큼 품에 안을 수 있느냐는 마음의 그릇(수제)을 말합니다. 군자는 그렇게 도와 덕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어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학문을 연마하고 내면의 덕을 닦는 예비 위정자를 말합니다. 소인은 그렇지 못한 대다수 보통 국민을 말합니다.


여기서 공자는 본명이 중유인 자로의 이름을 부르며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했습니다. 왜 하필 자로이며, 왜 도가 아니라 덕을 짚어서 말한 것일까요? 수제자인 자로는 공문십철 중에서도 정사(政事)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짊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치평의 도에 대한 조예는 깊은 반면 수제의 덕을 쌓는 데는 미진한 점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치평파 제자 중 맏이에 해당하는 자로를 콕 찍어서 지덕(知德)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위정자라면 마땅히 지도(知道)와 지덕을 겸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덕을 쌓으려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공자의 예리한 통찰입니다.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만물의 이치와 원리를 궁구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헤아리는 마음의 그릇을 확충하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지덕자는 드물다”고 통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정자라고 생각해보십시오. 통치의 원리를 파악하는 지도와 백성의 형편을 살피고 고충을 헤아리는 지덕 중 어느 편에 더 관심을 기울이시겠습니까. 뭔가 거창해 보이면서도 정치의 본령을 파악하게 해주는 지도를 먼저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공자 자신이 “아침에 도를 듣고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만큼 도를 깨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밖으로 생색내기엔 딱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백성의 형편을 살피고 고충을 들어주는 일은 몸과 맘이 모두 힘겨운 일이라 꺼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선되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던 그 많은 한국의 대통령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대인기피증에 걸려 기자회견도 피하고 ‘혼밥’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도 같습니다. 타인을 내 마음에 들이는 일은 그만큼 힘겹고, 잘해봐야 본전 찾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지덕자는 드물구나”라고 한탄한 것입니다.


서양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들은 탈레스처럼 만물의 기원을 추적한 자연철학자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고 왜 존재하느냐는 존재론과 그런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는 인식론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여기까지 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윤리론으로 발전해나갔으니 비로소 덕의 영역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철학의 역사를 짚어봐도 도가 덕에 선행하지만 그 사유와 실천의 어려움에 있어서는 덕이 도를 능가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지덕자는 드물구나"라는 공자의 혜안이 경탄스러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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