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3년상은 도덕적 계급투쟁

14편 헌문(憲問) 제40장

by 펭소아

자장이 물었다. “서경에 이르기를 은나라 고종(무정)이 부친상을 치르는 삼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찌 고종뿐이겠는가. 옛날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군주가 죽으면 모든 관원은 삼년 동안 총재(백관의 우두머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처리했느니라.”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자장왈 서운 고종량음 삼년불언 하위야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자왈 하필고종 고지인개연 군훙 백관총기이청어총재삼년



고종은 은나라의 22대 임금으로 이름이 자무정(子武丁)입니다. 그가 재위에 있었던 59년이 은나라가 가장 번성했을 때라 하여 ‘무정중흥(武丁中興)’이란 표현까지 있습니다. 은나라 시기 청동기에서도 무정이란 이름이 여럿 발굴될 정도의 명군이었습니다. ‘서경’ 주서(周書)의 17편 ‘무일(無逸)’에서 주공(周公) 희단의 입을 통해 무정이 재위에 오르고 “부친상을 치르는 3년간 말이 없었고(乃或亮陰 三年不言),” 그 뒤에도 근신하는 자세로 말을 아꼈으며 일단 말을 꺼내면 온화해 무려 59년의 재위 기간 내내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자장은 이 대목 중 부친상 3년간 말이 없었다는 게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서경’에는 亮陰, ‘논어’에는 諒陰으로 표기된 양음은 군주가 부모상을 치르는 기간을 뜻합니다. 복상 기간 군주가 머무르는 누추한 공간을 양암(亮闇 또는 諒闇)이라 한 것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양음을 양암으로 읽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볼 때 이는 후대의 착종입니다. 양암은 공간이 맞고 양음은 세월로 새기는 것이 적절해보입니다.


공자는 반색했을 것입니다. 부모 3년상(정확히는 만 2년상)은 당시 왕가의 사람들만 지키는 아주 특별한 의례였습니다. 공자는 그걸 군자학을 배우는 모든 제자에게 확대시켰습니다. 본디 군주의 자식을 뜻하는 군자라는 호칭에 값하기 위해선 고래로 군자의 의무사항이었던 부모 3년상을 몸소 실천하라는 함의가 숨어있었습니다. 다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순 없었기에 태어나서 걸음마를 떼고 말문이 트여 사람 꼴을 갖추는 3년 정도의 세월은 부모의 절대적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그에 걸맞은 애도 기간을 갖으라고 설파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장이 3년상에 대한 질문을 들고 왔으니 얼마나 예뻤겠습니까.


그래서 무경뿐 아니라 고대의 임금은 모두 부모상을 치를 때는 총재에게 왕권을 위임하고 추도에 전념했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사실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에 따르면 무경의 3년간 침묵에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정은 그 기간 쇠약해진 은나라의 중흥을 위한 비책을 암중모색했습니다. 압권은 자신을 도와 무정중흥을 가져온 명재상 부열(傅說)을 발굴한 것입니다.


‘천자문’의 70번째 문장인 열감무정(說感武丁), 즉 ‘부열이 무정을 감화시켰다’는 그에 대한 전설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서경’ 상서(商書)와 ‘사기’ 본기에 따르면 모든 정무를 총재에게 맡기고 어떻게 하면 은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무정의 꿈에 열(說)이라는 이름의 성인(聖人)이 등장합니다. 무정은 그 이름과 꿈속에서 본 용모파기를 토대로 그를 찾아내라는 수배령을 내립니다.


그에 부합하는 인물을 못 찾다가 부암(傅巖) 또는 부험(傅險)이란 험지에서 길 닦는 노역에 종사 중이던 열(說)이란 인물을 찾아내게 됩니다. 죄를 짓고 노비가 됐다는 설도 있고 원래부터 천민 출신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무정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막힘없이 답하는 것을 보고 꿈속의 인물과 동일인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곤 그에게 부(傅)라는 성을 하사하고 재상의 지위를 맡겨 무정중흥을 이루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아마도 무정은 국정을 복상 기간 총재에게 전권을 맡기고 자신을 도울 인재를 두루 추천받고 또 검증했을 겁니다. 그러다 노비 신세였던 부열이 인재임을 간파하고 그를 기용할 때 신하와 백성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설화를 연출했을 공산이 큽니다.


이 설화는 군주가 나라를 직접 다스리지 않고 스스로는 성인의 도를 닦으면서 현명한 재상을 기용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주희의 ‘군주성학(君主聖學) 재상정치(宰相政治)’론의 토대가 됩니다. 부열의 성인 부(傅)는 그가 노역하던 지명이기도 하지만 스승을 뜻하기도 하니 재상을 임금의 스승으로 삼았다는 함의를 갖습니다.


어쩌면 자장은 열감무정의 실체적 진실이 궁금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왕이 아니라 재상에게 정치를 맡겨야 한다는 재상정치론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이를 냉큼 받아 재상정치론보다는 부모3년상론을 합리화하는 데 적용합니다. 그만큼 공자 당대에 사인 계층에서 3년상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걸 관철시킴으로써 군자를 군왕의 반열로 올리려 했던 공자의 분투가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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