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헌문(憲問)제39장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경쇠를 치고 있을 때였다. 삼태기를 짊어지고 공자가 머물던 집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했다. “뜻이 담겨 있도다! 경쇠 치는 소리에!”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비루하구나! 땡땡거리는 소리가! 나를 몰라주면 그만둘 일이지. ‘물이 깊으면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걷고 건너네’라고 했거늘.”
공자가 말했다. “과감하구나! 그렇게 살면 어려운 일 하나 없겠구나.”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 “有心哉, 擊磬乎!”
자격경어위 유하괴이과공씨지문자왈 유심재 격경호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기이왈 비재 갱갱호 막기지야 사이이이의 심즉려 천즉게
子曰: “果哉! 末之難矣.”
자왈 과재 말지난의
격경은 맑은 소리를 내는 옥이나 돌을 두드려 연주하는 타악기입니다. 공자가 거문고 말고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衛)나라에 머물 때이니 천하주유의 시기임을 알 수 있고, 경세의 뜻을 뒀지만 그걸 알아주는 군주를 못 만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는 마음을 간파하고 있으니 고향으로 다시 낙향하기 직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기 연주 소리만 듣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까지 간파할 정도이니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하괴자‧荷蕢者)은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공자가 세상 한복판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입세간(入世間)의 인물임을 간파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떠나면 그뿐(莫己知也, 斯已而已矣)”이라고 비판한 점으로 봐서는 출세간(出世間)의 은자(隱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은 것 때문에 성내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되풀이 해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뼈아픈 비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괴자는 ‘시경’ 패풍(邶風) 편에 실린 ‘포유고엽(匏有苦葉)’이란 노래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물이 깊으면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걷고 건너네(深則厲, 淺則揭)’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厲는 ‘옷 벗을 려’, 揭는 ‘옷 걷을 게’입니다. 패(邶)라는 지역은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영토였던 곳이니 위나라 사람이 인용할 법한 노래입니다. 포유고엽은 세상사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니 형편에 맞게 짝을 찾아 장가들 가라면서 정작 자신은 소울 메이트가 될 여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심즉려 천즉게는 그 두 번째 구절로서 역시 형편에 맞게 대처하라는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들은 공자의 발언 중 앞부분은 “과감하구나”로 새기지만 뒷부분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반박하기 어렵구나”라며 은자에게 한 수 접어주는 식의 해석이 그 하나입니다. 어려울 난(難)을 '논박하다'라는 뜻으로 새긴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살면 어려운 일 하나 없을 테니 좋겠네”라고 슬쩍 풍자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저는 두 번째 의미로 풀어봤습니다. 이는 ‘포유고엽’이란 노래의 전체 메시지를 은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공자가 점잖게 꾸짖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입니다. 그 노래의 화자는 “박에는 쓴 잎이 있고, 나루엔 깊은 곳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인생의 쓴맛을 볼 때 개의치 말고 형편에 맞춰 살아가라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 짝지어 살아가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두 구절에서 “나를 부르는 저 뱃사공아, 다른 사람은 건너도 나는 안 건널거요/ 다른 사람은 건너도 나는 안 건너니, 내 벗이 될 님 기다릴 것이기에”라고 노래합니다. 다른 사람은 대충 짝지어 살아갈지 몰라도 나만은 내 영혼의 짝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떠나면 그뿐(莫己知也, 斯已而已矣)”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움찔했을 공자는 ‘심즉려 천즉게’라는 구절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시경의 시 삼백수를 달달 외우고 있던 공자이니 그 허점을 단숨에 간파했을 테니까요. ‘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구나. 그러면서 세상만사에 도통한 척하고 있다니!' 그래서 “와우, 포스 한번 대단하시네”라고 치켜세워주는 척하다가 “그렇게 살면 인생살이 참 쉽겠네?”라고 받아친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뜻 한 가지는 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것마저 놓아버린다면 뜬구름이나 부평초 같은 인생밖에 될 수 없습니다. 공자는 삼태기 짊어진 그 은자가 이를 간과한 채 마치 인생사를 꿰고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은 것입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그런 뜻(志)-그걸 이루던 이루지 못하던 상관없이-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는 거, 그게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아래 '포유고엽'의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실어놓으니 같이 한번 음미해보시기를.
匏有苦葉 濟有深涉(포유고엽 제유심섭)
박에는 마른 잎 달렸고, 나루터에는 깊은 여울 있네
深則厲 淺則揭(심칙려 천칙게)
깊으면 벗고 건너고 앝으면 걷고 건너네
有瀰濟盈 有鷕雉鳴(유미제영 유요치명)
나루엔 물결 차오르고 까투리 울음 높나니
濟盈不濡軌 雉鳴求其牡(제영불유궤 치명구기모)
물결 넘쳐도 수레의 굴대도 안 젖고 까투리는 제 짝(장끼) 찾아 운다
雝雝鳴鴈 旭日始旦(옹옹명안 욱일시단)
끼룩끼룩 기러기 울고 아침 해 떠오르네
士如歸妻 迨冰未泮(사여귀처 태빙미반)
선비님 장가오려면 이 얼음 풀리기 전에 오셔요
招招舟子 人涉卬否(초초주자 인섭앙부)
손짓하는 뱃사공아, 다른 사람 건너도 나는 안 건너요
人涉卬否 卬須我友(인섭앙부 앙수아우)
다른 사람 건너도 나는 안 건너니, 내 벗 될 님 기다려서 에요
*원문 중 '인섭앙부(人涉卬否)'와 '앙수아우(卬須我友)'의 앙(卬)은 '나 아(我)'와 같은 뜻의 '나 앙'으로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