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헌문(憲問) 제37장
공자가 말했다. “현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고, 그다음 위태로운 곳을 피하고, 그다음 겉모습이나 표정이 눈에 띠지 않게 예방하고, 그다음 말을 조심한다.”
공자가 말했다. “이를 실천한 사람이 일곱 있었느니라.”
子曰: “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자왈 현자피세 기차피지 기차피색 기차피언
子曰: “作者七人矣.”
자왈 작자칠인의
출세간(出世間)과 입세간(入世間)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당나라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수입된 불교 용어입니다. 출세간은 속세를 떠나 출가승이 돼 수도하는 것을 말하고, 입세간은 그를 통해 득도한 뒤 다시 속세로 돌아와 중생구제를 위한 불법 전파에 나서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중국의 양대 사상에 적용할 경우 세속적 삶을 경원시하는 도가(道家)의 세계관을 출세간이라 한다면 경세제민을 위해 현실정치 참여를 중시하는 유가(儒家)의 세계관은 입세간이라 할 만합니다.
앞서 ‘무위(無爲)’라는 용어가 ‘논어’에 처음 등장했음을 말씀드렸듯이 공자는 제자백가의 원류입니다. 그 사상에는 도가적 요소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증자와 맹자 이후 후대의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모습만 부각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외면하다보니 그런 종합적 면모가 감춰졌을 뿐입니다.
이번 장은 그런 도가적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암군과 폭군이 등장해 무도한 세상이 됐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는 출세간의 내용입니다. 공자는 4가지 단계를 말합니다. 피세(辟世), 피지(辟地), 피색(辟色), 피언(辟言)입니다. ‘세상을 등진다’는 뜻의 피세는 세속을 떠나 은거한다는 뜻입니다. 수양산에 숨어 야생완두를 캐먹고 산 백이와 숙제를 떠올리면 됩니다.
그럼 직역하면 ‘땅을 피한다’는 피지는 무슨 말일까요? 속세를 떠나기 어렵다면 위태로운 곳을 피해 살라는 소리입니다. 논어 제8편 ‘태백’ 제13장에 나오는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와 궤를 같이 하는 말입니다. ‘위태로운 나라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정감록’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거나 난리가 일어나도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추천한 열 곳을 뜻하는 ‘십승지(十勝地)’ 같은 곳에서 살라는 뜻입니다.
피세와 피지와 달리 피색과 피언은 쉽게 이해되진 않습니다. 해석도 구구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피세와 피지의 피(避)는 달아나다, 숨다, 피하다로 새겨야 하지만 피색과 피언에선 예방하다, 조심하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피색은 불만 어린 표정이나 겉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 띠지 않게 예방하라는 뜻 아닐까요? ‘논어’에서 색(色)은 여색이란 뜻보다는 겉모습이나 얼굴 표정으로 새기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피언은 무도한 현실을 비판하는 말로 인해 화를 입지 않게 조심하라는 의미일 듯합니다.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란 뜻의 구화지문(口禍之門)이나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표현과 궤를 같이 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다음 문장은 별도의 장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 ‘그렇게 행한’을 받는 내용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해집니다. 게다가 7명이란 숫자는 ‘미자’ 편 제8장에서 높은 덕과 비범한 재주를 갖췄지만 자신의 신념과 세상이 어긋나 벼슬길을 버리고 초야에 묻히는 일민(逸民)으로 거명된 사람의 숫자와 같습니다. 백이와 숙제, 우중(중옹),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입니다.
헌문 편의 이 장과 미자 편의 제8장은 똑같이 출세간의 테마를 다룹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의 경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양쪽에 등장하는 인물이 일곱입니다. 따라서 두 장의 내용은 ‘7인의 일민’에 대한 공자의 변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자’ 편에선 이들 7명을 3가지 범주로 나눴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더럽히지 않은 일민’으로서 백이와 숙제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의리에 맞았고 행실이 생각과 일치했던 일민’으로서 유하혜와 소련입니다. 세 번째는 ‘숨어 살면서 말까지 버렸으나 몸가짐이 깨끗했고, 벼슬길을 포기했지만 또 다른 벼슬길을 뚫은 일민’으로서 우중(중옹)과 이일입니다. 그 실체가 불분명한 주장은 세 범주 중 어디에 속하는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범주에 들어가 있는 이일도 어떤 사람인지 기록을 찾기 어렵습니다.
‘헌문’ 편에선 다시 일민의 4등급을 언급합니다. 최고 등급인 피세를 실천한 사람은 백이와 숙제입니다. 두 번째 등급인 피지를 실천한 사람은 아버지 고공단보(古公亶父·주태왕)가 제후의 자리를 막내인 계력(季歷·주문왕의 아버지)에게 물려주는 데 있음을 알고 주나라를 떠나 양쯔강 남쪽으로 갔다는 중옹이 해당합니다. 중옹의 형으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 동행한 태백(泰伯)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3등급인 피색과 4등급인 피언을 실천한 사람은 누굴까요? 정확히 둘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노나라에서 벼슬을 살다가 3차례 파직됐지만 다른 나라로 망명하기를 거부하고 노나라를 지켜 현자로 칭송받은 유하혜와 부모 3년상을 묵묵히 치러 역시 상찬 받은 소련이 그에 해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