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과 아레테(arete)의 차이

14편 헌문(憲問) 제3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천리마는 그 힘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덕을 칭송하는 것이다.”

子曰: “驥不稱其力, 稱其德也.”

자왈 기불칭기력 칭기덕야



덕이란 타자를 내 품에 얼마나 많이 품을 수 있느냐는 그 그릇의 크기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사람이 아니라 말에게도 덕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을 태우고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는 천리마의 덕은 과연 무엇일까요?

천미라는 잘 달리는 명마입니다. 그냥 잘 달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태우고 잘 달려야 합니다. 야생마도 힘이 좋아 잘 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태우지 못한다면 천리마의 자격이 없습니다. 따라서 기수라는 타자를 자신의 품에 안는 그릇이 큰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리마라 칭송을 들으려면 그 힘(力)이 아니라 덕(德)이 중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공자보다 120년 뒤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아레테(arete)’라고 불렀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종종 덕으로 번역되는 아레테는 탁월함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목적론적 세계관을 지녔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개체의 목적에 부합하는 탁월함을 아레테라고 불렀습니다. 그에 따르면 천리마의 아레테는 잘 달릴 수 있는 힘과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덕이 잘 결합할 때 발현되는 것입니다.

힘은 타고나는 것이니 본성(nature)의 산물입니다. 덕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니 훈육(nurture)의 산물입니다. 천리마가 되려면 그 둘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훈련이 잘 됐다고 하더라도 타고난 힘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천리마로 불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공자는 천리마로 만드는 데 힘은 종속변수에 불과하고 덕이 독립변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공자는 문덕(文德)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혁명을 통해 부국강병을 통한 패권(覇權)을 추구하는 춘추시대를 종식시키고자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육은 왕족과 귀족이란 특권층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그들을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자인 군자(君子)로 만들어주는 것이 그 혈통 때문이지만 그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그런 교육에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신분고 하에 상관없이 누구나 교육받으면 인격적 지도자로서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상의 계급혁명을 주창한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당대의 지배계층에 직접적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그 교육의 핵심에 문덕을 심어둔 것입니다. 현실 속의 왕과 제후가 물려받는 물리적 힘을 배제하고 그들이 명군인지 폭군인지를 그 평판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인 덕을 전면에 부각한 결과입니다. 그러다 보니 혈통적 군자가 물려받은 그 물리적 힘에 토대한 군사력인 무(武)나 경제력인 부(富) 보다는 그와 차별되는 정신력으로서 문(文)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말은 무와 부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당시 전쟁은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전차를 얼마나 많이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말을 키우느냐는 곧 그 제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재단하는 양적인 잣대였습니다. 그 말 중에서 천리마가 몇 마리가 되느냐는 그에 대한 질적인 잣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군사력의 핵심인 천리마를 결정하는 요소에서도 역시 힘이 아니라 덕이 중요하다는 말로 혈통의 군자들에게 일격을 가한 것입니다. 이는 16편 계씨(季氏) 제11장의 “제경공은 4천 필의 말을 가지고 있었지만 죽었을 때 백성 중에서 그의 덕을 칭송하는 이가 없었다”는 대목과 함께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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