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 인(仁)과 어질 현(賢)의 차이

14편 헌문(憲問) 제31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속일 거라고 미리 넘겨짚지 말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미리 억측하지 마라. 일단 그를 만나보고 난 뒤 나를 속일 사람인지 아닌지, 나를 믿어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미리 내다볼 수 있어야 진정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


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자왈 불역사 불억불신 억역선각자 시현호




이 장을 이해하는 데는 주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희가 편찬한 ‘사서집주’에 따르면 역(逆)은 일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짐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억(億)은 보지도 않고 미리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 둘은 뜻이 통합니다. 사(詐)는 남이 나를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불신(不信)은 남이 나를 의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그 둘은 뜻이 대조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을 만날 때 그가 나를 속일까 또 그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해석이 도출됩니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맑은 마음으로 그를 대하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만나고 난 뒤입니다. 사서집주는 억(抑)을 ‘그러나’라는 뜻의 반어사로 해석했습니다. 그보다는 '물러난다'는 뜻으로 보면 다음 구절의 이해가 쉬워집니다. 일단 그 사람을 만나보고 물러나서 그가 나를 속일 것인지 아닌지 또는 내 말을 믿어줄 것인지 아닌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현자라 할 수 있다고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국어에선 똑같이 어질다는 뜻으로 새기는 어질 인(仁)과 어질 현(賢)의 차이를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은 같은 개념일까요? 다른 개념일까요? ‘논어’를 토대로 둘을 비교해보면 인이 현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현은 인 중에서 특히 지적인 변별력이 뛰어난 경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나를 속이거나 또는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상태는 그 마음이 어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 그가 실제 나를 속이거나 믿어주지 않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함도 그 어진 마음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현명함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만 적용됩니다. 인(仁)은 그 누구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을 견지하면서 거기에 얼굴을 비춘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경지를 말합니다. 반면 현(賢)은 자신의 마음을 명경지수로 유지하는 것 여부에 상관없이 거기에 비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단계를 지칭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1
매거진의 이전글공자는 장유유서를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