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헌문(憲問) 제26장
공자가 말했다.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무를 도모하지 않는다.”
증자가 말했다.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자왈 부재기위 불모기정
曾子曰: “君子思不出其位.”
증자왈 군자사불출기위
공자와 자여(증자)의 말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별도의 장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테마가 비슷하기에 공자의 발언에 대해 제자인 자여가 부연 설명한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공직에 진출해 일정 직책을 맡은 군자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뭇 다른 내용입니다. 공자의 말은 8편 ‘태백’ 제14장에 똑같이 등장하는데 자신이 맡지 않은 영역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관료가 고위직에 오르면 다른 분야 관료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관장하지 않는 분야의 일에 개입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면 정무에 혼선이 빚어지게 됩니다. 공자는 이를 경계해 자신이 맡은 영역에만 충실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반면 자여의 말은 자신이 맡은 직책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선 아예 고민조차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 일만 잘하면 그뿐이지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선 쓸데없이 참견하는 걸 넘어서 그에 대한 생각 자체를 멈추라는 말입니다. 이 둘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공직자로서 월권하지 말라는 것과 내 직분 외에 것에 대해선 눈길도 주지 말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업무가 서로 연계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설사 연계되지 않은 업무라도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내 일 아니니까’하고 외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해당 부처에서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데 중뿔나게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발언하는 것은 월권으로 비칠 수 있기에 삼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부처에서 도움을 요청할 경우에 대비해 해법을 고민하고 모색해 둬야 하는 것 역시 공직자의 자세입니다.
자사의 발언은 공자의 가르침을 절대화시켜 교조주의로 흘렀다는 데 있습니다. 공자 말대로 다른 부처의 업무에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말라하면 충분한 것을 “다른 부처 일에 대해선 발언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말라”라고 극단화시키는 우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정에서 국정 전반의 문제를 논하는 상대부가 됐을 때를 망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생각이 오가야 하는 자리에서도 ‘우리 부서 일이 아니니까’라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미덕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합니다.
두 발언은 다른 유가 경전에도 등장합니다. 공자의 발언은 ‘중용’ 제14장 첫머리에 나오는 “군자는 그 처지에 알맞게 행동할 뿐 그 밖의 것은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단순히 군자가 어떤 직위에 있느냐를 넘어서 그가 처한 상황에 알맞게 대처하는 것이 중용의 실천이란 뜻이 담겼습니다. 따라서 높은 지위에 있다고 아랫사람을 얕보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다고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않되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직무가 다른 사람의 일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고지식하고 보신주의적 자여의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여의 발언은 ‘주역’의 간괘 상사(艮卦 象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산이 중첩된 것이 간이니,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兼山艮 君子以思不出其位)”의 뒤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점을 쳐서 간괘가 나올 특수한 경우엔 산 위에 다시 산이 올라탄 형국이라 좋지 않으니 함부로 오버하지 말라 경고한 것을 공직자의 일상적 자세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니 또 다른 오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