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헌문(憲問) 제19장
공자가 위령공의 무도함을 토로하자 강자가 말했다. “그와 같음에도 제후의 지위를 잃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중숙어가 사신을 잘 다루어 다른 제후국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축타가 종묘를 관장해 선조의 가호를 받게 하고, 왕손가가 군대를 통솔하여 국방을 튼튼히 했습니다. 이와 같은데 어찌 그 지위를 잃겠습니까?”
子言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자언위령공지무도야 강자왈 부여시 해이불상
孔子曰: “仲叔圉治賓客, 祝鮀治宗廟, 王孫賈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공자왈 중숙어치빈객 축타치종묘 왕손가치군려 부여시 해기상
위령공(衛靈公)은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당시 위(衛)나라의 제후였습니다. 천하주유 당시 공자가 경상이 되기 위해 가장 많이 공을 들인 나라가 위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죠. 그리고 노나라로 돌아오게 됐으니 그때 삼환의 우두머리가 계손 씨 가문의 8대 종주인 계강자(계비)입니다. 원문에서 강자(康子)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공자는 삼환의 우두머리인 계손 씨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왔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제자 중에 계손 씨 가문에서 벼슬을 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7대 종주인 계환자 때는 자로가 가재(家宰) 역할을 했고 그 아들인 계강자 때는 염유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자로는 삼환의 세 본거지 성채를 무너뜨리려는 '삼도도괴(三都倒壞)'를 위해 ‘트로이의 목마’가 된 것이었습니다. 염유는 14년의 천하주유가 무산되자 공자의 귀향 공작의 일환으로 취업된 것이었습니다.
염유는 계강자 아래서 많은 공을 세워 공자의 귀환을 성사시킵니다. 이후 계강자는 공자를 여러 차례 만나 자문을 구합니다. 하지만 결코 공자의 정치적 컴백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계강자가 이미 정무를 총괄하고 있는데 나이도 훨씬 많고 정치적 지향성도 전혀 다른 공자를 기용해 후환 거리를 삼았을 리 만무했을 테니까요. 다만 염유와 자로 같은 공문의 인재 풀을 써먹기 위해 불가근불가원의 느슨한 연대를 유지한 것입니다.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 인물이었던 겁니다.
그런 계강자가 당시 천하의 스캔들 메이커였던 위령공에 대해 묻습니다. 위령공의 아내 남자는 고국인 송나라 출신 미남자 송조를 불러다 자기 곁에 두기 위해 위나라 대부의 자리를 마련해줬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독대를 빌미로 공자를 유혹했다는 소문의 주인공까지 됩니다. 또 위령공 자신은 얼굴 잘생긴 것밖에 볼 게 없었던 미자하를 대부로 기용하고 총애하는 바람에 남색꾼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입니다.
공자가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지만 여기에는 ‘무도(無道)하다’는 한마디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의표를 찌르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왜 안 망하고 저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겁니까?”
그 순간 공자의 표정이 몹시도 궁금합니다. 속으로 ‘어쭈? 요놈 봐라?’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천하의 공자가 이를 내색할 리 없습니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공자가 자랑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내공으로 계강자의 뒤통수를 내리 칩니다. 외교는 중숙어(공문자라는 시호로 불리게 되는 공어), 의례는 축타(위령공 편 제7장에 등장하는 사어와 동일인), 국방은 왕손가 같은 출중한 인물에게 맡겼기 때문이라며.
이 세 사람은 모두 공자가 한 수 아래로 보는 인물입니다. ‘논어’에도 이들과 얽혔을 때 이들을 능가한 공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스치듯 등장합니다. 따라서 공자의 이 발언은 계강자에게 두 번의 펀치가 됩니다.
첫 펀치는 공자가 무도하다고 평가한 위령공 보다도 노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는 계강자가 인재 등용을 못하고 있다고 안면을 강타한 스트레이트입니다. 두 번째 펀치는 중숙어, 축타, 왕손가 셋을 합쳐도 미치지 못할 공자 자신을 꿔다논 보릿자루 취급하는 주제에 어디서 반박질이냐며 복부 깊숙이 꽂힌 훅입니다.
그다음 발언은 작(作)에 해당하기에 공자가 직접 입에 담지 않았지만 결정적 어퍼컷이 됐을 겁니다. “위령공 보다 더 무도한 당신 같은 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뭔가?” 레프리에 해당하는 ‘논어’의 편집자는 여기서 휘슬을 불며 공자의 TKO승을 선언합니다. 그 마지막 펀치의 작렬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