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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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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21. 2020

하후돈과 최대집

우민일기(2020년 9월 2일 비)

  우민은 어려서부터 소설 삼국지를 즐겨 읽었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주목하게 되는 등장인물이 달랐다. 처음 삼국지를 접한 초등학생 땐 '의리남' 조자룡에게 홀딱 빠졌다. 그러다 점차 엄청난 유혹 앞에서도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았고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해 몰락한다는 점에서 동서양 영웅의 원형에 가까운 관우의 매력에 눈을 떴다.  


  중고생이 되며 만년 백면서생으로 보이던 제갈량이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임을 인정하게 됐다. 반전은 또 기다리고 있었으니 서른을 넘기고서야 간웅으로 그려진 조조야말로 동양의 카이사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조조를 중심에 두고 삼국지를 읽다 보면 조조의 관우 장비로서 전의와 허저 그리고 조조의 무수한 제갈공명들이 삼국지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았음을 눈치채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조조 진영의 진짜 '씬 스틸러'는 하후돈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하후돈은 제갈량에게 농락당하는 위나라 장수의 대명사다. 매번 멧돼지 같이 용맹만 앞세우다 제갈량의 매복 기습공격에 당해 '아뿔싸!'를 외치며 후퇴와 패배를 반복하는 장수로 등장한다. 그러다 한쪽 눈에 화살이 박혀 외눈박이 장수가 된다. 하지만 그런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에 제갈량 사후 촉나라 군이 가장 두려워하게 되는 명장으로 거듭 난다. 일대 반전 같지만 사실 하후돈은 젊은 시절부터 명장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만 나관중이 제갈량에게 매번 당하는 캐릭터로 그를 택하는 바람에 우둔하게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우민은 코로나19로 국민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와중에 정부와 의료계의 난데없는 싸움을 지켜보며 하후돈을 떠올렸다. 위나라의 명장 하후돈이 아니라 나관중에 의해 번번이 제갈공명에게 당하는 '어리석은 빌런'으로서 하후돈 말이다.


  사실 우민은 국난극복의 시기에 어이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 자중지란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의료인력 부족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당위에선 옳을지 몰라도 모든 정책은 타이밍과 노하우가 중요한 법인데 정부는 여기서 실책을 저질렀다. 하필이면 의료진의 분골쇄신 헌신이 필요한 시기에 의료계 목소리를 들어보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데 누군들 가만있을까.


  문제는 이에 맞서 싸우는 의료계의 전략 부재다. 외모나 언행에서 하후돈을 연상시키는 분을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여론전은 생각도 않고 무조건 옥쇄작전에 나섰다. 힘 대 힘으로 맞서 싸우는 것만이 싸움이 아니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박수를 유도하고, 상대의 잔인함을 드러내 상대가 마음껏 힘쓸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현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86세대의 특기는 상대를 부당한 특권을 누리는 소수로 몰고 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끌어내는 전술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계 하후돈’의 저돌성을 간파하고 정책 유보라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아뿔싸, 싸움만 붙으면 결사항전밖에 모르는 그 하후돈은 이룰 간과하고 ’ 전군 돌격’을 외치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남은 것은 정부의 매복 전술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각개격파당하는 일뿐이다.


  우민은 생각한다. 그게 우리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의료보험 수가를 정부안대로 밀어붙인 결과 정작 우리 의료계에서 직접적 생명과 연결된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뇌혈관외과의 인력수급이 힘겨워진 반면 성형외과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뼈가 부러져도 찾아갈 동네 외과가 가뭄에 콩 나듯 있을 뿐이다. 의료 인력을 충원하더라도 보험수가가 합리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료계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의료계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로 인해 국민이 어떤 혜택을 받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니 의료계도 강대강의 싸움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슬기로운 여론전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눈총을 한 몸에 받는 하후돈 같은 인사 말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에 등장할 법한 의사를 수장으로 모셔야 한다. 스스로를 '어린 의사' 운운하는 애들을 팔아 동정표 구하려는 ‘앵벌이 전략’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지 않게 진짜 국민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야 할 '슬기로운 의사'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 의사들 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누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 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또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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