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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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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22. 2020

공부를 잘한다는 것

우민일기(2020년 9월 3일 흐린 뒤 맑음)

  공부 잘하는 의사가 최고라는 '어린 의사님'들의  글을 보면서 우민은 다시 상념에 잠겼다. 저 친구들은 진짜 어리구나. 1990년대 막노동하며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했던 분이 썼다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 제목을 못 들어 봤나 보다.


  우민은 공부를 제법 잘했다. 그렇다고 매번 전교 1등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올백'에 '올수'에 고3 때 모의고사로 전국 8등이란 것도 해봤다. 우민이 다니는 고등학교가 당시 공부 제일 잘한다는 명문이어서 그래 봤자 전교 2등밖에 안됐다. 그래도 그 학교를 졸업할 때 8명밖에 안 되는 1등급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위 SKY대 미끄러지고 재수해 인 서울대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실망이 크셨지만 우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게으른 우민이 공부를 잘했던 이유가 남들과 다른 이유에서였음을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걸 배우고 그걸 자기 걸로 익혀가는 과정이 재밌어서 그런 거였으니까 사실 어느 대학을 가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돼 10년쯤 지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홍대 앞에서 술 한 잔 할 때였다. 마침 우민은 국내  칸트 철학의  대가 인터뷰 기사를 쓰고 왔기에 "칸트의 3대 주저 다들 기억하지?, 내가 그걸 평생에 걸쳐 완역 중인 분을 만나고 왔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침 그날 모인 친구들은 서울대를 찜 쪄 먹고 교수님 박사님 전문직 종사자가 된 분들이었다. 어? 그런데 분위기가 갑분싸 아닌가.


"다들 국민윤리 시험 때 딸딸 외우던 거잖아.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진과 선과 미를 다룬 책. 왜 모르는 척하고 그래?"

"야. 고등학고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걸 기억하겠냐?"

"엉? 철학자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이고 그다음이 칸트잖아. 그 칸트의 대표작인데 기억이 안 난다고?"


  그랬다. 친구들은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는데 좋은 대학 들어가는데 도움이 된다 하여 꾹 참고 공부한 거였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간 이후 자기 전공이 아니면 고등학교 때 배운 걸 싹 다 잊어버린 거였다. 반면 우민은 그런 친구들에 비해 게을러터지고 공부량도 적었음에도 그것들을 다 기억한다. 공부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현타가 왔다. 아, 내가 공부를 잘한 것은 똑똑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고 불공평한 거였구나. 예를 들어 골프를 잘 치면 좋은 대학을 들어간다고 치자. 그럼 그 친구들은 골프를 싫어해도 미친 듯이 운동을 해 골프의 귀재가 됐을 놈들이다. 반면 골프를 싫어하는 나는 대학입시 자체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부터 든 생각이 '공부는 왜 하는가'였다.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입신출세하려고"라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게 아니면 왜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하겠느냐며.


  한국사회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잉태됐다. 과거급제만이 지식인의 징표라고 생각한 조선시대의 유물이었다. 성리학을 개창한 송대 유학자들은 자기수양(수신제가)을 위해 공부하라 했지만 현실의 사대부들은 입신양명(치국평천하)을 위해 공부를 했다. 게다가 양반가의 체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 3대 안에 과거 급제자가 나와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더해졌다. 쉽게 말해 3대째 과거 급제자가 안 나오면 퇴락한 양반가라는 표현으로 포장된 상민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이후 이 땅에서 공부는 국가공인시험에 함 격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여기서 2가지 문제가 불거진다. 첫째는 고시라고 불리는 국가고시 합격자가 되면 로또 당첨자 마냥 부러워하는 심지어 그 이상의 대접을 해주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단편적 지식을 딸딸 외워서 시험에 합격하면 세사 만사 다 제 뜻대로 될 것 같아 보이니 안하무인의 인격파탄자를 양산하게 됐다.


  둘째는 출세의 지표가 국가고시가 되다 보니 국가의 요청에 부응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자들이 지식인 행세를 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워낙 강고하게 구축돼 일제강점기가 됐는데도 머리 좀 좋다 싶으면 양심의 가책은 따지지도 않고 국가고시를 거쳐 총독부 관료가 되는 이들을 양산하게 됐다. 또 해방 이후엔 나라님이 누구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시 합격을 지상과제로 삼고, 또 합격하고 나선 자신을 간택해준 나라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이들이 지식인 행세를 하게 됐다. 그 결과가 유시민 같은 어용지식인의 양산이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이 '먹물'이라고 욕먹는 진짜 이유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독립된 지식인(Independent Intelligent)이 드문 사회가 됐다. 자기가 좋아서 공부를 하고 그렇게 배운 것에 입각해 불편부당하게 세상을 비판하고 독창적 목소리가 담긴 책을 쓰고 이론을 구축하는 지식인 말이다.  이런 지식인들의 둥지가 돼야 할 대학도 공부는 하기 싫은데 입신출세하려고 억지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대학은 사디스트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화풀이할 대상이 없으니 석박사 과정 조교들을 상대로 상식 밖의 일들을 벌이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 하나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요령이 좋은 것이다.  초중고 시절 제한된 시간에 똑같이 공부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대부분 그거다. 노트필기 잘하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뭘 강조했는지 메모해놓고, 그렇게 배운 걸 짧은 시간에 암기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좋은지에 능한 것뿐이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공부 잘하는 거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우민 이상으로 공부를 잘해 서울대 들어가고 대기업이 주는 장학금 받고 천조국으로 가서 박사학위 받고 거기서 교수를 하는 친구의 말이다. "미국 석박사 과정에 들어오는 한국 학생들 보면 스펙이 어마어마해, 성적도 기가 막히고. 문제는 논문을 쓸 때야. 받아쓰기에만 능수능란한 데 정작 스스로의 호기심이 없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그러니 대부분이 논문 주제도 못 정해서 교수들에게 논문 주제를 정해달라고 떼쓰지. 그렇게 억지로 쓴 논문이 진짜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쓰는 여기 애들 논문하고 상대가 되겠어?"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또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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