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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23. 2020

염갈량이란 별명과 운명

우민일기(2020년 9월 11일 비)

  야구팬인 우민은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이 건강악화로 이번 시즌 아웃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의 남다른 별호와 운명의 장난을 생각하며 장탄식을 토했다. 염 감독은 선수 시절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마흔다섯이란 나이에 신생팀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발탁된 뒤 돌풍을 일으키며 '야구계의 제갈공명'이란 뜻으로 '염갈량'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창단 1년밖에 안된 팀을 이끌고 4년 동안 3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시즌2위까지 올랐으니 그럴만했다. 하지만 결국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감독직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2016년 준플레이오프전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며 돌연 사퇴하더니 2017년 와이번스 단장으로 깜짝 변신한 것. 이때 히어로즈 팬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으나 복잡한 넥센 구단 사정을 들어보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2018년 와이번스 우승을 선물하고 떠난 힐만 감독의 뒤를 이어 다시 감독이 됐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컸으리라.

   

  염갈량이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고 첫해이던 2019년 와이번스는 시즌 내내 1위를 달렸으나 뒷심 부족으로 결국 9게임차였던 베어스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한때 자신이 이끌던 키움 히어로즈에게 대패하며 3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올 시즌 성적은 충격적이게도 꼴찌권을 맴돌고 있다. 그 스트레스로 쓰러져 입원한 뒤 한동안 감독직을 박경완 수석코치에게 넘겨야 했다. 다시 돌아와서도 얼마를 못 버티고 아예 시즌 아웃되게 된 것이다.     


  우민은 처음 염갈량이란 별호를 듣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운명이 제갈량을 닮아가는 것을 보고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량이 아무리 신출귀몰한 재주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다섯 차례(삼국지연의에선 '육출기산'이라고 여섯 차례로 나옴) 중원 정복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막판에는 건강악화로 피를 토하다가 천추의 한을 안고 전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가 한국 나이로 쉰넷.  

   

  염갈량 역시 선수의 잠재력을 꿰뚫고 발탁해 주전 선수로 길러내는 남다른 안목과 과감한 승부수로 젊은 나이에 감독에 발탁되며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페넌트레이스 1위와 코리안 시리즈 1위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히어로즈 시절과 와이번스 시절을 합쳐 모두 여섯 차례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병약한 몸으로 그라운드에서 물러나게 된 나이가 한국 나이로 쉰셋이다.     


  물론 염갈량의 시간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내년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하지만 우민의 계산으로는 올 시즌 예상되는 성적과 내년 이후 모기업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전력 보강이 없는 한 앞으로 3년은 우승후보가 되기엔 힘들어 보인다. 과연 그는 염갈량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와신상담 끝에 '사마엽'(제갈량의 그늘에 가려있었지만 자신의 시간을 기다린 끝에 최후의 승자가 된 사마의를 닮은 염경엽)으로 재탄생할 것인가?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또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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