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대한 일갈

14편 헌문(憲問) 제10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가난하게 살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은 어렵다. 부유하게 살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쉽다.”


子曰: “貧而無怨, 難. 富而無驕, 易.”

자왈 빈이무원 난 부이무교 이



평범해보이지만 요즘 한국사회에 팽배한 능력주의를 질타하는 뼈 때리는 말씀입니다. 한 사회의 중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이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능력이 탁월해서라는 주장은 공자의 이 일갈 앞에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능력주의 주창자들은 지도층이나 상류층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만 제대로 실천한다면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따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천만에 만만의 말씀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겸손해지기가 엄청 어려운 것처럼 말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것이 그보다 열 배 백배는 어렵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위나라의 집정대부인 공숙문자가 부유함에도 교만함이 없었기에 죽을 때까지 화가 미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여러 차례 봤습니다. 그에 대해 공자는 존중의 표현을 보내긴 했지만 귀히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공숙문자 보다는 위나라의 대부로서 평생 자신의 허물을 줄이기 위해 애쓴 거백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거백옥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진짜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선 부유층의 갑질과 탈선이 워낙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밧줄(낙타는 오역)로 바늘구멍 꿰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말씀이 더 다가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유층 중에서도 겸손한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 반면 뉴스로 잘 안 다뤄져서 그렇지 가난한 사람들 중에 이 사회를 원망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 마음을 표출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지 않고 설사 옮겨졌다 해도 극단적 경우만 뉴스로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지도층이 사회문제를 다룰 때 잊지 말아야 할 일반 원칙을 단순해 보이지만 통찰력 깊게 담아냈습니다. 저 말의 의미가 뭘까요? 부유층이면서 겸손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또 부유하다고 갑질 해대는 인사는 과감하게 처벌하고 가난해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함부로 처벌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부유층의 불만에 찬 목소리보다 빈민층의 고통에 겨운 흐느낌에 더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 서면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말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말인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런 말 하는 것 자체가 교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님도 깨닫게 됩니다.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금도(襟度)이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굳이 읽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능력주의는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걸 누린다 생각하는 사람조차 불행하게 만듭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면 압니다. 인생이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더라도 정상적 학교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가 특혜입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에겐 평범해 보이는 그 일상조차 특권입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똑같이 일한다고 다 같이 성공하고 출세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엔 보통 덕(德)으로 번역되지만 능력이란 뜻의 비르투(virtu)보다 운(運)으로 번역되는 포르투나(fortuna)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그렇다고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이 모두 포르투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를 휘어잡을 수 있을 만큼 비르투를 쌓아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덕과 능력을 쌓은 사람 중에 포르투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내가 출세한 것은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한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베풀 줄 알게 됩니다. 정당한 몫이 아님에도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차지했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주변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반면 “내가 출세한 것은 내 땀과 눈물, 피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인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들이 나만큼 노력하고 고생해 봤어? 그러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소중하게 얻은 내 것을 탐내는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당신이 출세하고 성공했다면 부러움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 힘껏 갈채를 보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당신만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곧 불행해질 당신과 당신의 주변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당신이 생각 하나만 바꾸면 당신과 주변 사람 모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곁을 찾아주지 않은 행운의 여신을 원망하고, 그런 자신을 돌아봐주고 챙겨주지 않은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임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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