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헌문(憲問)제8장
공자가 말했다. “(정나라에서) 외교문서를 작성할 때는 비심이 초안을 잡으면 세숙이 논리적 취약점을 보완하고. 사신으로 갈 자우가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문장을 가다듬으면 자산이 최종 조율을 하였다.”
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
자왈 위명 비심초창지 세숙토론지 행인자우수식지 동리자산윤색지
여기 등장하는 4명의 인물은 모두 정(鄭)나라의 대부입니다. 정나라는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서도 역사가 짤고 영토가 작은 나라였지만 자산(子産)이 집정대부로 있던 시기 탁월한 외교력으로 강소국(强小國)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 원동력이 외교 무대에서 치밀한 논리와 상대를 감화시키는 설득력 넘치는 말솜씨와 글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력이나 재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말과 글의 힘에 의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문덕(文德)의 정치를 역설해온 공자의 상찬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기원전 529년 평구(平丘)에서 진(晉)나라를 중심으로 제후들이 모여 맹약을 맺을 때 분위기가 삼엄했습니다. 진소공은 무려 4000대의 전차를 대동하고 나타나 위압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켜나갔습니다. 당시 패권국인 진나라의 동의 없이 약소국인 주(邾)나라와 거(筥)나라를 공격했던 노나라의 소공은 맹약에 끼지도 못했고 집정대부 계평자는 억류돼 있다가 진나라로 끌려가 한동안 귀국하지 못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산은 종주국인 주(周)나라에 바치는 공물의 양이 정나라에게 너무 많이 할당됐음을 한낮부터 저녁까지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해 결국 관철시켰습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동료 대부 자태숙이 잔뜩 겁에 질려 “그러다가 다른 제후국들의 노여움을 사면 어쩌려고”라고 했지만 자산은 오히려 태연자약했습니다. 공자는 ‘춘추’에서 이를 전하면서 “자산은 이때의 행차로 나라의 초석을 새로 놓았다고 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공자의 눈에 당시 정나라는 문덕정치의 화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외교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를 면밀히 분석한 듯합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이 장에서 등장한 ‘드림팀’입니다. 이 드림팀은 야구의 1~4번 타자들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습니다.
그 선두타자는 비심(裨諶)의 몫이었습니다. 자산은 비심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습니다. “야외에선 뭔가 그럴듯한 구상을 잘하는데 실내로 들어오면 감이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아이디어가 풍성하고 큰 그림은 잘 그리긴 하는데 섬세하지 못하고 뭔가 허전한 대목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일단 진루타를 치고 출루해 후속타자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1번 타자의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그가 작성한 초안을 넘겨받아 논리적 허점은 없는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를 검토하게 하는 세숙(世叔, 본명은 유길․游吉, 세숙은 자)은 ‘강한 2번 타자’에 해당합니다. 훗날 자대숙(子大叔)으로 불리게 되는 세숙은 자산의 오촌조카로 자산이 죽고 난 뒤 정나라 정경 자리를 물려받은 인물이니 차세대 거포였던 겁니다. 자산은 그런 세숙에게 일부러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맡겼습니다. 자산의 생각이나 판단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없는지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게 한 것입니다.
3번 타자 역할을 맡은 자우(子羽)는 얼굴마담입니다. 자우는 각국을 돌아다니는 현장외교 전문 인력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속어로 ‘배우’라고 부릅니다. 준비된 대본을 그럴듯하게 연기해낸다고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자우는 자신에게 넘겨진 대본을 청산유수로 읊어댈 수 있게 자신만의 말투와 어휘로 손을 보는 겁니다. 핵심적 내용은 그대로 두고 조사와 어미, 쉼표와 따옴표 정도만 손본다고 보면 됩니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자우는 배우 이상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각국의 사정은 물론 주요 인사들의 친족관계나 서열과 위상, 장단점까지 두루 꿰고 있었기에 반드시 자문을 구했다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자공에 필적할만한 외교관이었으니 가공할만한 3번 타자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4번 타자인 자산이 등장합니다. 원문의 동리(東里)는 자산이 사는 마을 이름이니 친근한 아호를 붙여 부른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공자가 자산을 가깝게 느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자산은 앞의 1~3번을 모두 능가할 정도로 진루타도 잘 치고, 도루도 잘하고, 홈런과 타점 생산능력도 높은 슈퍼스타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혼자 맡을 수 없기에 앞의 세 사람이 밥상을 차려주면 종지부를 찍는 역할만 하는 겁니다. 세 사람이 차려놓은 밥상이 흠잡을 게 없으면 그냥 넘어가지만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싶으면 ‘신의 한 수’를 가미함으로써 화룡정점을 찍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정나라 외교의 드림팀에 대한 이런 청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산은 단순한 4번 타자가 아니라 플레잉코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의 지휘자와 같습니다. 단순히 타선을 짜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다채로운 능력 중에서 작전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만 짜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외교팀이 빚어낼 전체적 화음과 음색을 염두에 두면서도 그걸 위해 세부적 연주자들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지 까지를 다 꿰고 있는 겁니다.
자, 이를 위해선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할까요? 총체적 사운드를 그려내는 능력뿐 아니라 세부 악기에 대한 연주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연주자의 잠재력은 물론 그 장단점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비범한 안목까지 갖춰야 합니다. 셋째로 자신이 구상하는 사운드를 위해 그들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개입하지 않게 절제하고 그들 간에 불협화음이 빚어지지 않게 갈등조정 능력이 탁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드림팀을 외부의 질투와 압력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산이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공자로부터 그토록 높은 찬사를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