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치사랑, 동등한 사랑

14편헌문(憲問)제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사랑한다면 노력하지 않게 내버려 두겠는가? 충심이라면 깨우쳐 주지 않겠는가?”


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자왈 애지 능물로호 충언 능물회호



첫 구절이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가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수고로움을 덜어줘선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사랑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자식 사랑, 스승의 제자 사랑, 군자의 백성 사랑으로 봐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스승이 제자의 숙제를 대신해줄 수 없듯이 군자가 백성의 삶을 세세하게 다 챙길 순 없습니다. 그들을 진짜 사랑한다면 그들 자신의 힘으로 자립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게 기다려줘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뒤처졌을 때는 격려해주고 불리한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겠다고 매번 고기를 잡아줘선 안 됩니다. 그들 스스로 고기를 잡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의 수고로움을 이겨내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터득한 방법으로 스스로 먹고살아 가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앞 구절이 내리사랑이라면 뒤 구절은 치사랑에 해당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충성으로 모신다면 윗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걸 일깨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칫 윗사람의 심기를 거슬러 내가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못 보고 못 들은 척하는 것은 윗사람을 진심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대가 진심을 다해 윗사람을 섬긴다면 윗사람이 잘못된 길로 간다 싶을 때 거침없이 간(諫)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직적 인간관계를 놓고 이 구절을 바라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럼 수평적 인간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남녀의 사랑이나 친구와의 우정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진실로 누군가를 아끼고 좋아한다면 그가 성장하고 꿈을 이루는 것을 격려하고 지지해줄 수는 있어도 그걸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걸 대신해주는 순간 그의 성취를 훔쳐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수평적 관계가 깨지고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를 모른 척하거나 덮어줘도 수평적 관계는 무너집니다. 한편으론 그의 마음을 사고 싶어서 비굴하게 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얽매여 질질 끌려가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내가 그를 하찮게 여기는 겁니다. 언제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손절매하겠다는 이해타산이 깔린 관계이기에 그와 깊숙이 엮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기피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공자의 혜안은 이렇게 만능키에 가깝습니다. 수직적 관계의 자물쇠에 꽂았을 때 스르르 열린다 생각되지만 그 열쇠를 좀 더 깊이 집어넣어 보면 수평적 관계의 잠금장치까지 풀어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자가 괜히 만고의 스승으로 불리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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