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 중에 어진 사람이 없는 이유

14편 헌문(憲問) 제6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


子曰: “君子而不仁者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자왈 군자이불인자유의부 미유소인이인자야



어질다는 것을 덕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이 장은 쉽게 풀리지가 않습니다. 군자는 당연히 어질어야 하는데 어질지 못하다고 하니까 이를 높은 지위에 있는 대인(大人)으로 풀게 됩니다. 또 소인 중에 어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하니 소인을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 아주 졸렬한 사람 취급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어질다는 사람의 품이 넉넉하고 자애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수제의 덕과 개관적인 치평의 도를 겸비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적 윤리와 집단적 정치를 두루 아우르는 덕목을 갖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와 덕을 아우르는 인(仁)의 경지를 지향하는 군자 중에서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할만한 사람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반대로 소인은 도와 덕의 합일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상에 충실한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그중에 타인을 배려하는 수제의 덕을 갖춘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면의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하지만 치평의 도를 터득한 소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배움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공자의 발언은 바로 이를 짚고 있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어딜 가나 배포가 큰 사람이 리더십도 좋아서 반장, 이장, 좌장을 맞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품성도 좋고 리더십까지 갖춘 사람은 이미 군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니 더 이상 소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겁니다.


물론 거기엔 쭉정이도 많이 섞여있습니다. 겉으론 군자 행세를 하지만 자기 잇속만 챙기기 바쁜 속물입니다. 공자가 ‘덕의 적’이라고 말한 향원(鄕原), 곧 사이비 군자입니다. 더러운 세상에 적응을 잘하면서 청렴한 척 해 사람들의 신망을 얻지만 처세에만 능할 뿐 진리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 없기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현상유지에 연연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향원은 세상 물정에 밝고 시류에 편승하는데 능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현실 원리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를 표방하며 마치 원칙에 충실한 것처럼 위장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진보주의자 중에도 이런 향원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겉으론 정의롭고 청렴한 척하지만 뒤로 몰래 자기 잇속을 빈틈없이 챙기는 속물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진보를 표방한 향원을 ‘내로남불’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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