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만큼은 양보 못해

14편 헌문(憲問) 제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라.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동은 당당하게 하되 말은 공손해야 한다.”


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자왈 방유도 위언위행 방무도 위행언손



원문의 위(危)는 보통 ‘위태할 위’로 새깁니다. 동시에 ‘높다, 가파르다’라는 뜻과 ‘단정하다, 바르다’는 뜻도 있습니다. 대다수 주석서는 바르다 내지 정직하다로 풉니다. 저는 '높다'는 뜻과 '바르다'는 뜻을 함께 지닌 ‘당당하다’로 풀어봤습니다.


나라에 도가 있다는 말은 도리에 맞게 정치가 행해진다는 뜻입니다. 이를 반드시 성인이 출현해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다스리는 사람이 누구든 사심을 개입시키지 않고 이치에 맞게 나라가 돌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그럴 때는 말과 행동을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도층이 부패하고 나라가 정상궤도를 이탈하는 상황이 도래했음에도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면 ‘경거망동(輕擧妄動)’이 따로 없습니다. 군자라면 마땅히 나라의 도를 바로잡기 위해 나서야 하지만 그 언행은 ‘은인자중(隱忍自重)’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참으며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행동은 하되 눈에 띠지 않게 조심스레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이때 더 주의할 게 있으니 ‘구화지문(口禍之門)’ 또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라는 소리입니다. 잘못된 정치를 함부로 비판했다가 아까운 목숨만 잃으면 나라의 도를 바로 잡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당당하게 거침없이 입을 놀리기보다는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갖고 한껏 공손하게 말하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공자의 ‘고사(高士) 정신’은 죽지 않았으니 말은 최대한 자신을 낮춰서 하되 행동만큼은 당당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무도한 권력자와 말을 섞게 되거나 다른 사람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함부로 본심을 드러내지는 말되 그렇다고 행동까지 비겁하거나 비루하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권력자로부터 좋은 조건의 영입 제안을 받더라도 혼탁한 정치에 발을 디디지 말 것이며 혹여 마음 깊이 혁신을 꿈꾸며 거기에 참여하더라도 결코 금도(襟度)를 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말은 겸손하게 할지언정 목에 칼을 들이대며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강요할 때는 결코 그에 굴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물론 역사를 읽으면 이런 공자의 말과 달리 비굴한 처신도 마다하지 않으며 성공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충신불사이군을 무시했던 관중, 굶주렸을 때 식량 대신 진흙덩이를 받고도 고개를 숙인 진문공, 오왕 부차의 똥까지 맛보며 종노릇까지 마다 않은월왕 구천, 동네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굴욕을 견딘 한신, 상갓집 개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파락호 행세를 한 흥선대원군 이하응….


분명한 것은 공자는 그들과 분명 다른 차원의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세속의 성공보다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그렇기에 공자의 제자들이 저마다의 원대한 포부를 밝힐 때 “봄이 되면 새 옷 입고 강가에서 목욕하고 산봉우리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증석(증점)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나도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공자는 세속적 성공의 잣대를 떠나 자신의 마음속 잣대를 중시한 선비였기에 ‘양심의 자유’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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