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탕핑족을 어떻게 볼까?

14편 헌문(憲問) 제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선비 된 자가 안일을 마음에 품으면 선비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자왈 사이회거 부족이위사의



원문의 거(居)는 기본적으로 ‘살다, 거주하다’의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그래서 회거(懷居)를 1차적으로 ‘편안한 거처에서 살고 싶어 한다’라는 뜻으로 새기거나 2차적으로 주자처럼 ‘마음 편히 살고자 하는 것’으로 풀기도 합니다. 사(士)는 공자 시대에는 공경대부 아래서 일하는 하위 공무원을 뜻했습니다. 따라서 본래의 뜻은 “하위 공무원이 되어 마음 편히 살고자 하면 제대로 된 하위 공무원이라 말할 수 없다”에 해당합니다.


송나라 이후 대부가 벼슬하는 선비를 뜻하면서 사는 벼슬하지 않는 선비라는 뜻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 둘을 아울러 부를 때 대부 앞으로 나가 ‘사대부’라 칭하게 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와 더불어 선비는 덕을 닦고 도를 터득해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현할 뜻을 품은 예비 군자를 뜻하게 됐습니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덕을 쌓고 도를 닦아 대인(大人‧대부 이상의 고위 공직자)이 되거나 대인이 못되더라도 그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사대부라는 단어가 출현하면서 군자는 벼슬하는 선비(대부)건 벼슬하지 않는 선비(사)건 그들이 모두 지향하는 인격과 경륜의 완성체로 의미가 변모합니다. 현실정치에 뜻을 둔 모든 사대부의 이데아(원형)가 된 것입니다.


고전 텍스트의 해석은 원래의 뜻을 음미하면서 동시대에 걸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공자의 발언을 하위 공직자의 복무자세로만 새기는 것은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중세 이후의 사대부와 오늘날의 지식인을 아우르는 의미의 선비로 바꿔 다음과 같이 새겨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비가 되어서 일신의 안위만 꿈꾼다면 진정한 선비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예나 지금이나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일신의 안위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경감시켜 주기 위한 제도적 개혁과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신의 안위를 고민하는 것은 보통 사람인 소인의 몫인 만큼 군자를 지향하는 선비는 그와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선비는 ‘소확행’이나 ‘워라밸’, 요즘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탕핑(躺平‧드러누워 쉬고 싶다)족’의 문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일을 추구하는 소인의 전형적 행태라고 볼까요? 공자가 되살아났다면 또 어떻게 말할까요? 아니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변형된 저항으로 볼까요? 현대적 선비라 생각하시는 분들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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