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23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어울릴 줄 알되 동화되진 않는다. 소인은 별 차이도 없으면서 화합할 줄 모른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논어’에서 가장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장입니다. 이 장에서 출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표현도 인구에 많이 회자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화는 화합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동은 동화한다, 똑같아진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즉 군자는 자신만의 개성과 자율성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화합할 줄 알지만 소인은 다른 사람과 생각이나 행동방식에 별 차이도 없으면서 정작 화합할 줄 모른다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이는 “군자는 자긍심이 높되 다투지 않고, 무리를 짓되 당파를 만들진 않는다”(15편 ‘위령공’ 제22장)는 구절과 상통합니다. 군자는 ‘독립적 지식인(Independent Intellectual)’으로서 사상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법을 압니다. 반면 보통사람은 사상이라 할 만한 게 없이 욕망과 유행을 좇기 바쁘다는 점에서 고만고만하건만 도통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부동(不同)의 조건이 뭘까요? 요즘 개성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의식주의 스타일 차이일까요? 아닙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모범답안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결론은 같더라도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입니다. 유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군사부(君師父), 곧 임금, 스승, 아버지와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렇기에 더욱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공자는 그런 사람을 군자라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공자왈 맹자왈’을 외워서 똑같은 말을 주워 담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자신만의 생각과 언어로 벼려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군자인 것입니다. 소인은 그렇게 다르게 생각하기가 안 되는 사람입니다. 남들처럼 학교 공부 열심히 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취직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보통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별 차이가 없는 보통사람들은 왜 화합하지 못하는 걸까요? 새로 산 옷을 입고 등교하거나 출근하다가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불쾌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똑같은 걸 추구하고 살기에 더욱 남과 똑같다는 소리를 듣는 게 싫은 겁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부귀영화를 원하는데 그건 제한돼 있으니 똑같은 걸 추구하는 다른 수많은 경쟁자가 싫어지는 겁니다. 둘째 그러니 다들 닮은꼴의 삶을 살면서 정작 잠재적 경쟁자와 비슷하다는 말은 죽기보다 듣기 싫으니 아주 작은 차이를 엄청난 간극 인양 침소봉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주 조그만 차이를 두고 상종하지 못하겠다고 싸우기 일쑤인 겁니다.
반면 독립적 사유를 지향하는 군자는 자신처럼 독립적 지식인을 꿈꾸는 소수의 사람을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유가 자신과 다른 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생각의 차이를 전제하되 그 차이를 좁혀서 공존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생각을 상호 물들여가다가 비슷한 톤의 색이 도출되면 그에 맞춰 조금씩 양보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이 화이부동의 경지인 것입니다.
라틴어 표현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에도 그와 유사한 생각이 녹아 있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삶의 방식'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서로의 생각에서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 이를 위반하지 않기로 잠정적 협정을 맺는 것, 그것이 삶의 방식이란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생활의 지혜에서 출발해 국제분쟁이 발생했을 때 분쟁해결을 위해 당사국 간에 암묵적으로 체결되는 잠정합의를 모두스 비벤디라고 칭하게 된 것입니다. 서로 생각의 색깔이 다를 때 싸우거나 억지로 일치시키려 하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물들여가며 절충 색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화이부동 아닐까요?
맹자나 주자 그리고 그 둘을 추종한 조선의 주자학자들은 입으로만 ‘화이부동’을 되뇌며 오로지 유가사상, 그중에서도 수제를 강조한 도학(道學)만이 옳고도 바른 생각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유학사상이라도, 심지어 같은 주자학자끼리도 사색당파로 나뉘어 서로 상종할 사람이 못 된다면서 사상투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만이 진정한 공자의 후계자라며 상대를 공자가 계승한 문덕(文德)을 어지럽힌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매도했습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손수 실천한 그들이야말로 사문난적까진 아니더라도 소인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