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14장
염유가 조정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공자가 물었다. “어찌 늦었는가?” 염자가 대답했다. “정무(政務)가 있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무(事務)였겠지. 만일 나랏일이었다면 내 비록 조정에 참여하고 있진 못해도 들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冉子退朝. 子曰: “何晏也?” 對曰: “有政.”
염자퇴조 자왈 하안야 대왈 유정
子曰: “其事也. 如有政, 雖不吾以, 吾其與聞之.”
자왈 기사야 여유정 수불오이 오기여문지
원문에서 염유를 염자(冉子)라 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자(子)라는 경칭은 원래 대부(大夫)에게 붙이던 것인데 훗날 스승을 높여 부르는 경칭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선 염유가 대부의 지위에 올랐다 하여 붙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염유는 계강자의 가재(家宰)로 출발해 조정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대부의 지위까지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자와 만나기로 하였는데 조정에서 회의 때문에 늦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왜 늦었느냐?”는 스승의 질문에 “나랏일이 있어서”라고 답하다니 무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조정에서 이러저러한 일로 논의가 있어서 늦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공자로부터 군자학을 배운 제자의 자세일지인데 저렇게 답했다는 것은 뭔가 얼버무리려는 것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공자도 이를 눈치채고 “나랏일은 무슨 나랏일? 계손 씨네 뒤치다꺼리나 하고 왔겠구먼”이라고 받아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공자가 한때 노나라 대부를 지냈기 때문에 조정에서 중요 회의가 벌어지면 이를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다만 노나라 대부 중에 공자의 지인 내지 제자가 여럿 있었기에 그들을 통해 주요 국정 현안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맹손 씨의 종주인 맹의자는 공자의 제자였고, 같은 공문 출신인 공손멸이 사형인 자로를 참소했음을 알려준 자복경백도 있습니다.
단순히 스승에게 불손하게 대했던 염유에 대한 비판을 위해 이 장이 논어에 수록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계강자의 가신 출신인 염유에게 자신의 보스를 위해 하는 일과 공적인 나랏일을 혼동하지 말라고 일갈한 그 내용 때문입니다. 거기엔 나랏일인 정무(政務)와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무(事務)를 뚜렷이 구별하라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오늘날의 국회의원에게 적용하면 소속 계파를 위한 활동이나 파벌싸움을 의정활동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일갈한 것과 같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그걸 나랏일로 포장하는 정치인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요? 정치에 참여한 사람이 공(功)과 사(私)를 엄격히 구별할 줄 모르면 자신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됨을 공자는 여기서 매섭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희의원 여러분, 당대표님이나 대선후보님을 모시는 일은 나랏일이 아니라 여러분의 출세를 위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자꾸 그걸 나랏일이라고 부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