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12장
공자가 말했다. “설사 제대로 된 황제가 나타난다고 해도 한 세대(30년)는 지나야 어짊이 이뤄질 것이다.”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
자왈 여유왕자 필세이후인
공자가 충효의 화신일 거라는 편견을 지우고 읽으면 도발적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충효사상으로 왜곡해온 유학자들은 ‘왕자(王者)’라는 표현을 ‘왕도로 세상을 다스리는 성왕’으로 포장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원문 그대로 ‘왕다운 왕’이란 소리입니다. 거기엔 이미 ‘왕다운 왕은 드물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2500년 전 절대왕정 시대에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게 믿기십니까? 조선시대에 대놓고 저런 발언을 한 유학자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공자 시대 왕은 천자를 의미했습니다. 중국에서 황제라는 표현은 진시황 이후 등장합니다. 그 전에는 모두 왕이었습니다. 다만 주나라 때부터 천신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천자라는 표현을 병기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왕은 제후들 위의 천자를 뜻합니다. 천자 노릇 제대로 하는 천자가 드물다는 뜻이니 공자가 살던 노나라 제후는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진시황 이후 왕이 황제가 되면서 호칭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제후에게 왕이란 칭호를 내려주게 됩니다. 중국의 조공 체계에 따르면 조선은 명나라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이었기에 그 임금을 왕으로 불러 준 것일 뿐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여기서 왕을 단순히 임금으로 해석해선 안 됩니다. 여러 제후국을 아우르는 황제국의 황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자로’ 편에서 공자는 좋은 정치의 유효기간에 대해 1개월, 36개월, 7년 그리고 30년이란 여러 수치를 언급합니다. 자신을 재상으로 기용했을 때 한 달이면 가시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고, 3년이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제10장). 또 훌륭한 인물이 7년간 백성을 교화하면 전쟁에 내보내도 된다고 밝혔습니다(제29장). 그리고 여기 12장에선 제대로 된 임금이 30년은 통치해야 어짊이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공자를 재상으로 기용하면 3년이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하면서 제대로 된 임금이 30년을 통치해야 어짊이 이뤄진다고 한 것이 모순으로 다가섭니다. 속단하면 공자 자신을 재상으로 기용하면 3년이 될 것을 임금이 직접 통치하면 30년이 걸린다고 말한 것처럼 들립니다.
공자를 재상으로 기용하고 3년이면 백성을 먹여 살리는 족식과 국방을 튼튼히 하는 족병, 백성의 신뢰를 얻는 민신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외적이 침입했을 때 이를 방비하는 수준이지 군대를 이끌고 원정까지 나가 승리하기 위해선 7년의 세월은 필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천하의 일부를 구성하는 제후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왕은 그런 제후국 100개가량으로 구성된 중국 전역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범주(카테고리)가 완전히 다르기에 그 기간도 훨씬 더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공자가 제후국의 경우 제후다운 제후가 나왔을 때 어진 정치가 실현되는 기간을 따로 언급한 것은 없습니다. 다른 공자의 발언을 감안하면 대략 3년~7년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고려나 조선시대의 임금에 대해 어진 임금이라는 불리기 위한 기한을 황제의 기준인 30년에 맞추는 것은 잘못입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으로 보는 것이 국가 규모에 맞는 판단 아닐까 합니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나라의 대통령 임기는 대략 4년~10년입니다. 중임제를 택한 미국은 4년부터 8년까지 가능합니다. 프랑스는 7년 단임제였다가 5년 중임제로 바뀌어 임기가 5년~10년이 됐습니다. 한국은 5년 단임제입니다. 공자가 말한 기간의 딱 중간에 해당합니다. 기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변명하기엔 애매한 기간인 셈입니다. 국민이 대통령 중심제를 계속 유지하길 원한다면 4년 중임제를 채택하는 것이 공자의 기준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500년 전의 기준이 지금도 유효하다니 참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