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세대가 빼먹은 공자 가르침

13편 자로(子路) 제9장

by 펭소아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많기도 하구나.”

염유가 말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무엇을 더해줘야 할까요?” 공자가 말했다.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해줘야 한다.”

염유가 말했다.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면 무엇을 더해줘야 할까요?” 공자가 말했다. “가르쳐야 한다.”


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자적위 염유복 자왈 서의재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염유왈 기서의 우하가언 왈 부지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왈 기부의 우하가언 왈 교지



맹자’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가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産)’입니다. 양혜왕 편 상에서 왕도정치를 묻은 제선왕(전변강)에게 맹자가 강의한 내용입니다.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恒産)를 먼저 해결해준 뒤 인의(仁義)를 지키는 한결같은 마음(恒産)을 갖도록 가르쳐야 왕도정치의 근본이라는 내용입니다.


한국의 산업화 세대가 즐겨 인용하는 구절인데 ‘논어’의 이 구절의 변용입니다. 여기서도 공자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주고 그 다음 교화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산업화 세대는 ‘논어’의 이 구절을 놔두고 왜 ‘맹자’를 자주 인용한 것일까요? 첫째는 맹자가 공자를 능가하는 도덕주의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선명한 대비 효과가 발생한다고 본 것입니다. 둘째 공자는 이와 좀 다른 맥락의 이야기도 펼쳤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할 때 경제(足食)와 국방(足兵)도 중요하지만 백성의 신뢰를 얻은 것(民信)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부교(富敎)론을 펼치면 맞바로 민신론의 반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공자가 창학한 군자학의 주인공은 임금을 섬기고 치국평천하를 이뤄야 할 사대부이지만 맹자의 왕도정치론의 주인공은 왕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론자는 부국강병론자라는 점에서 사실 유가가 아니라 법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500년간 법가사상을 금기시한 세뇌를 받았기에 차마 상앙이나 한비자를 인용할 수 없어 그 대타로 개혁의 중심에 왕을 놓은 맹자를 끌고 온 것입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옹호하는 산업화 세대의 입맛에 다원주의적인 공자보다는 일원주의적인 맹자가 더 잘 맞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 세대는 단순 명쾌한 정답을 추구합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가 그들의 기본 심성 중 하나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이라는 양날의 검(劍)을 쥐고 천변만화한 검무를 추는 공자보다는 그 모든 게 임금이 똑똑해야 한다는 왕도정치의 외날의 도(刀)를 들고 “나는 한 놈만 두들겨 패”라고 외치는 맹자가 더 매력적으로 비친 것 아닐까요?


맹자가 됐건 공자가 됐건 산업화 세대가 찬양하는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일방통행적이고 독선에 가까운 통치를 옹호해줄 턱이 없습니다. 백성의 먹고살 것을 먼저 해결해주라고 했지 그를 빌미로 인의를 짓밟고 백성을 희생시키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맹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해 선거 결과를 조작하고 부정부패 처단을 외치면서 뒤에서 호박씨 까먹기 바쁜 정부를 지지한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진짜 사문난적이라 할 것입니다.


천하주유에 나설 때 보통 자로가 공자의 수레를 몰지만 자로가 없을 때는 염유나 번지가 나섰습니다. 자로, 염유, 번지는 모두 공문에서 문(文) 보다 무(武)의 자질이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셋 중에서도 염유는 문무겸비의 수완가이자 실용적 정치가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노나라 집정대부 계강자의 가재가 되고 공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손 씨 집안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한 끝에 대부의 반열에 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런 염유의 그릇을 꿰뚫어 봤을 것입니다. 그런 염유가 국가전략에 해당하는 위방(爲邦)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에 맞춤형 대답을 들려준 것입니다. 그 성향 상 염유가 실용적 노선을 취할 것을 알았기에 먼저 부(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밑밥을 깐 뒤 궁극적으로는 백성의 교화에 힘쓰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군자학으로 따지면 치평의 노선에 충실하되 그 화룡정점은 수제가 되어야 한다고 일깨워 준 것입니다. 이런 깊은 뜻을 모르고 그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따위의 물질주의적 처세술을 앞세우는 한국의 산업화 세대를 만나게 되면 공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말년에 염유의 타락을 질타하며 공자 자신이 한 말을 외치지 않았을까요? “북을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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