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시삼백 자부한 이유

13편 자로(子路) 제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시 삼백 편을 암송한다한들, 정치를 맡겼을 때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내보냈을 때 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비록 그 많은 시를 안다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亦奚以爲.”

자왈 송시삼백 수지이정부달 사어사방 불능전대 수다역해이위



공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시경’에 수록된 시가 300여 편입니다. 그래서 논어에선 ‘시삼백(詩三百)’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시경은 서주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 불렸던 노래의 가사 모음집입니다. 원래는 수 천 편이었는데 공자가 그중 300여 편만 엄선해 시경을 편찬한 것입니다. 따라서 시삼백이란 표현 자체가 자신이 편찬한 시경에 대한 자부심이 잔뜩 묻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시경’이 편찬되기 전에 이미 그들 노래가 정치와 외교 무대에서 주요 텍스트로 사용됐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민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인구에 회자되던 노래의 가사를 원용해 자신들의 심경과 기대를 문학적 비유와 반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세련됨의 징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자신의 외아들인 백어(공리)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시삼백을 공부하라 한 것에는 이런 현실적 이유도 담겨 있었던 겁니다. 흥미롭게도 시삼백의 시는 대부분 사랑노래입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동식물에 빗대 청춘남녀가 서로를 사모하거나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아니면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나 상대의 배신으로 결혼이 깨어진 여인의 이별가입니다.


오늘날의 대중가요 가사의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노래 가사를 정치와 외교 무대에서 이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노래들이 유명해 일종의 레토릭 차원에서 끌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데 공자는 동시대 다른 정치인과 달리 그런 레토릭의 차원을 넘어 그 텍스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랫말 속에 담긴 백성의 순정한 마음을 읽어냈습니다. 또 당시에도 낯선 동식물 관련 용어가 담긴 박물학적 지식의 보고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기에 수천 편 중에서 300편의 앤솔로지를 선정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것입니다.


그 자부심은 단순히 시경에 실린 시의 심미적 가치와 풍성한 정보를 간파했다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시삼백 속에 공자가 꿈꾼 예악(禮樂)정치와 문덕(文德)정치의 씨앗이 심어져 있음을 발견한 것이 더해져야 합니다. 첫째 시경의 시는 다양한 국가의전에 쓰이는 노랫말이란 점에서 음악을 통해 국가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끌어낼 수 있다는 예악정치에 부합합니다. 둘째 그 노랫말의 내용에 백성의 순정한 마음이 담겼다는 점에서 물리적 힘이 아니라 진실한 글 안에 숨은 마음의 힘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문덕정치와 공명합니다. 다시 말해 시삼백은 그 형식에서 예약을, 그 내용에서 문덕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그토록 시삼백을 사랑한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공자는 이를 에둘러 표현합니다. 시삼백을 그저 레토릭으로 여기고 줄줄이 암송하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정치와 외교의 본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삼백을 관통하는 예악과 문덕의 정신까지 통달해야 제대로 된 정치와 당당한 외교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일갈인 것입니다.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1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