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4장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늙은 농사꾼보다 못하다.” 번지는 또 채소 재배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늙은 채마지기보다 못하다.”
번지가 물러난 뒤 공자가 말했다. “번지는 소인이로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윗사람이 믿음을 좋아하면 백성은 실정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강보에 싸서 업고 올 터인데 농사짓는 법을 어디에 쓰려는가?”
樊遲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吾不如老圃.”
번지청학가 자왈 오불여노농 청학위포 왈 오불여노포
樊遲出. 子曰: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敢不服. 上好信,
번지출 자왈 소인재 번수야 상호례 즉민막감불경 상호의 즉민막감불복 상호신
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 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즉민막감불용정 부여시 즉사방지민강부기자이지의 언용가
번지는 자 계열 제자 중의 자로라 부를만한 인물입니다. 무공이 뛰어나면서 우직한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로의 빼어난 판단력이나 정무감각까지 갖추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평생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묻습니다. 그것도 두 번을. 세상만사에 대해 박학다식함을 자랑했던 공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으니 공자의 아킬레스건 내지 역린을 건드린 셈이 됐습니다.
여러 제자들 앞에서 두 번이나 “모른다”를 되풀이해야 했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그래도 번지를 바로 앞에 두고 질책하는 우를 범하진 않습니다. 번지가 자리를 뜨기를 기다려 자신이 가르치는 군자학에 농사짓는 법이 빠진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禮)와 의(義)와 신(信)을 가르침으로써 정치를 잘 이끌면 절로 백성이 모여드니 농사는 그때 백성에게 맡겨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농사짓는 법 보다는 군자학이 더 우위에 있다는 설명인 셈입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공자의 답 속에 이미 잘못된 설명이라는 점이 반영돼 있습니다. 마지막에 공자는 반문합니다. 농사짓는 법을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백성을 아끼는 군자라면 마땅히 그렇게 모여든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면 수고를 덜하면서도 더 많은 소출을 올릴 수 있는지 농사 잘 짓는 법 또한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정치의 3조건(족식 족병 민신) 중에 백성이 농사를 잘 지어 잘 먹고살게 해야 하는 족식이 들어있음을 스스로 망각한 것입니다.
번지를 제자로 들일 무렵이 천하 주유 후반기로 추정되니 공자의 나이가 육순을 넘겼을 때입니다. 그 나이에 뒤늦게 농사짓는 법을 배우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학에 굳이 농법까지 들어있지 못한 이유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미뤄 짐작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공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물탄개과(物憚改過)의 화신입니다. 배움을 구할 수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스승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런 공자가 자신의 약점을 건드렸다 하여 번지를 평범한 사람(소인)이라 폄하한 점은 실망스럽습니다.
공자는 육순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 말했습니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은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소리입니다.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물었을 때가 대략 이순을 넘은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자의 반응은 이순에 값한다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찔리자 잔뜩 성새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이순이란 나이를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주변에서 다 걸러주는 나이로 이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만합니다.
진정한 이순이라면 다음과 같이 답했어야 합니다. “번지는 군자로구나.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군자학에 농사짓는 법을 넣지 못했는데 오늘 번지의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너희는 나의 전철을 밟지 말고 농사짓는 법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