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의 원류, 공자

13편 자로(子路) 제3장

by 펭소아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군주가 스승님을 모셔다 국정을 맡긴다면 제일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반드시 이름과 명분을 바로잡을 것이다.”

자로가 말했다. “스승님이 현실과 거리가 먼 우원함이 이렇다니까요! 왜 이름과 명분부터 바로 잡겠다 하시는 겁니까?”

공자가 말했다. “거칠구나, 유(由·자로)야. 군자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법이니라. 이름과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그 말을 따르지 않게 된다.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못한다. 일이 이뤄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기하지 못한다. 예악이 흥기하지 못하면 형벌이 맞지 않게 된다. 형벌이 맞지 않으면 백성은 어찌 할 줄 모르게 된다. 따라서 군자는 명분을 세워야 그 말에 권위가 실리고, 말에 권위가 실려야 반드시 행해진다. 군자는 말함에 있어서 구차함이 없도록 힘쓸 뿐이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자로왈 위군대자이위정 자장해선

子曰: “必也正名乎!”

자왈 필야정명호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자로왈 유시재 자지우여 해기정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자왈 야재 유야 군자어기소부지 개궐여야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사불성 즉예악불흥 예악불흥 즉형벌부중 형벌부중 즉민무소조수족 고군자명지필가언야 언지필가행야 군자어기언 무소구이이의



자로와 공자의 정치관이 충돌합니다. 자로는 정무적 판단력에 있어서만큼은 공자를 능가할 때가 많았습니다. 공자가 공문십철을 뽑을 때 정무 분야에서 염유와 더불어 자로를 뽑은 이유입니다.


그런 자로가 스승에 대해 감히 우(迂)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우원하다는 소리이니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그에 맞서 야(野)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거칠다, 촌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막역했던 사제관계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다른 장과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논어 주석가들도 이를 느꼈던 것일까요? 이 대화를 자로가 말년에 위(衛)나라 집정대부였던 공회의 가신으로 출사하기 전후의 대화로 봅니다. 당시 위나라 제후는 위령공의 손자인 위출공이었습니다. 원래는 위출공의 아비인 괴외(훗날의 위장공)가 물려받았어야 할 자리였는데 한 세대를 건너뛰어 위출공이 물려받은 것입니다. 괴외는 계모인 남자(南子)의 불륜 소문으로 모욕을 겪자 격분해 계모를 암살하려던 것이 들통 나 국외 추방됐기 때문입니다.


논어 주석가들은 이 장에서 위나라 군주를 위출공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출공이 아비에게 양보했어야 할 자리를 꿰찼기에 명분 없는 군주라고 비판하자 위나라에서 벼슬 살던 자로가 반발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로가 공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회의 가신으로 가는 바람에 위나라에 몰래 잠입한 괴외가 아들인 위출공을 몰아내는 궁정쿠데타에 휘말려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고 풀어냅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공자가 유세의 대상으로 삼았던 위령공은 명분 있는 군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인인 남자가 본국인 송나라 출신의 미남자 송조를 위나라 대부로 초빙해 놓고 바람을 폈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그 자신은 잘생긴 미자하라는 총신에 정신이 팔려있던 제후 아니었던가요? 위령공-위장공-위출공 3대에 걸친 제후가 모두 문제가 많았기에 누가 더 정당성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한 나라의 재상으로 전권을 위임받았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과 답으로 보는 것이 맞다 생각됩니다. 공자가 그에 대해 이름과 실체를 일치시키는 일부터 착수하겠다는 형이상학적 답을 내놓습니다. 그러자 현실적인 자로가 그런 한가한 고담준론으로 어찌 제후의 귀를 솔깃하게 하겠느냐며 좀 더 구체적 대안을 내놔야 하지 않겠느냐고 타박한 겁니다.


하지만 이름 그리고 명분을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정자정야(政者正也)로 대표되는 공자 정치관의 핵심을 이룹니다. 정치의 본질을 바로잡는 것으로 볼 때 그 첫 단추는 이름과 실체의 불일치를 깨는 것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답게 하는 것이 정치’(12편 ‘안연’ 제11장)라는 내용도 그 연장선에 위치합니다.


이는 또한 공자 언어관의 핵심과 이어집니다. 이름과 실체를 일치시킴으로써 비로소 말(言)이 진정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의 힘으로 일(事)이 성사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군자의 말이 현실이 되는 힘을 발휘해야 비로소 공자가 꿈꾼 예악 정치의 발판이 마련됩니다. 그러니 군자는 그 말이 구차해지지 않도록 이름과 실체, 말과 행동의 일치를 도모하는 것에 힘써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자는 돌연 법가(法家)가 반색할만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예악 정치가 제 자리를 못 잡으면 형벌(刑罰)이 맞지 않게 되고, 형벌이 맞지 않으면 백성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후자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예악과 형벌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예악은 현대적 용어로 바꾸면 질서와 조화를 뜻합니다.


위정자의 말 한마디가 구체적 정책과 연결될 때 위정자와 국민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고 그 신뢰에 입각할 때 비로소 그 나라에 질서와 조화가 깃들게 됩니다. 이런 질서와 조화가 없으면 사법체계는 변덕스러운 통치자의 자의적 잣대에 의해 춤추게 됩니다. 그럴 경우 형벌은 백성의 안정적 삶을 위협하는 덫이나 흉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형벌을 받게 돼도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니 법질서는 더욱 문란해지고 백성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법가는 이런 공자의 생각에서 단초를 얻어 발전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법가는 이 장에서 공자가 펼친 논리를 역순으로 밟은 것이라고 단순화시켜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벌을 공명정대하게 집행하면 국가와 사회에 질서와 조화가 깃들게 되고,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위정자의 말에 권위가 실리게 된다. 그에 따라 국가 차원의 정책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다.'


따라서 유가는 공자의 정치철학의 순류(順流)라고 한다면 법가는 그 역류(逆流)라고 풀어낼 수도 있습니다. 전자가 보편적 원칙에서 구체적 실천을 끌어내는 추상성 높은 연역적 사유방식이라면 후자는 구체적 실천에서 출발해 보편적 원칙에 도달하려는 귀납적 사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가 전자를 선호했다면 자로는 후자를 선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로가 법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자로는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대략 100년 뒤 구체적 실천과 현실적 대안을 중시하는 자로의 후예들 중에서 그 역류파가 등장한 것이 법가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법가의 원류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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