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2장
중궁이 계씨의 가재 되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실무자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 그들의 작은 허물은 눈감아 주고, 현명한 인재를 발탁하거라.”
중궁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현명한 인재를 알아보고 발탁할 수 있을까요?”
공자가 말했다. “네가 잘 아는 현명한 인재를 발탁해라. 그러면 네가 모르는 현명한 인재를 다른 사람들이 내버려 두겠느냐?”
仲弓爲季氏宰, 問政.
중궁위계씨재 문정
子曰: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자왈 선유사 사소과 거현재
曰: “焉知賢才而擧之?”
왈 언지현재이거지
曰: “擧爾所知, 爾所不知, 人其舍諸.”
왈 거이소지 이소부지 인기사저
중궁(仲弓)은 공문 최고의 명문가인 노나라 염(冉)씨 가문 3형제 중 둘째인 염옹(冉雍)의 자입니다. 염씨 족보에 따르면 염옹의 부친 염리(冉離)가 안씨(顔氏)를 아내로 맞아 맏아들 염경을 낳았는데 자가 백우(伯牛)이고, 차남으로 염옹을 낳았는데 자가 중궁입니다. 안씨가 죽은 후 공서씨(公西氏)를 아내로 맞아 염구를 낳았는데 자가 자유(子有)여서 염유(冉有)라고 불렀습니다. 훗날 공서 씨는 삼형제를 공자에게 맡겨 공부를 시켰는데 셋 다 공문십철에 꼽혀 ‘일문삼현(一門三賢)’로 불리게 됐습니다. 백우와 중궁은 안연과 민자건 다음으로 덕행이 뛰어난 인물로 꼽혔고 염유는 자로와 더불어 정사(政事)에 뛰어난 인물로 꼽혔습니다.
흥미롭게도 사서에는 중궁과 염유가 똑같이 공자보다 스물아홉 아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친인 염리가 전처인 안씨와 후처인 공서씨를 거의 동시에 임신시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니면 후처인 공서씨가 전 남편의 자식을 뱃속에 품은 채 재혼했다고 봐야합니다. 삼형제의 부친인 염리가 평판이 좋질 않아 ‘얼룩소(犁牛)’로 불렸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백우와 중궁은 나란히 덕행이 뛰어났던 반면 염유는 수완이 좋았다는 점에서 서로 결이 달랐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추론이기도 합니다. 허나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는 만큼 중궁을 염유보다 나이가 한두 살 위의 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중궁은 공자 제자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의 하나입니다. 공자가 제자 중에 최고로 평가한 인물이 안연입니다. 공자 자신도 안연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중궁에 대해선 안연에게도 쓰지 않은 찬사가 등장합니다. “옹은 남면(南面)하게 할만하다”(6편 제1장)는 표현입니다. 남면은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다는 뜻이니 왕이나 제후가 될 만하다는 평가입니다. 자로는 국방장관, 자공은 외무장관, 염유도 장관급은 된다고 했던 인물평과 비교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장에서 중궁이 계씨 가문의 가재가 됐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춘추좌전’에서 계씨의 가재를 맡은 공자 제자는 자로와 염유 둘 뿐입니다. 자로는 공자의 천하주유 전에 계환자가 계씨 가문 종주일 때, 염유는 천하주유가 끝날 무렵 계환자의 아들 계강자가 종주일 때 등용됐습니다. 중궁이 계씨 가문의 가재가 됐다면 그 사이 어느 즈음이 아닐까 싶고 그 기간도 짧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문에서 중궁의 위상은 꽤 높지 않았나 싶습니다. 형인 백우는 중년의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공자보다 앞서 죽었습니다. 동생인 염유는 계씨 문중의 가재로 노나라 대부의 반열에 올랐지만 한때 공자로부터 파문을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따라서 공자 사후 일문삼현 중 중옹의 영향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논어’ 편찬에 참여한 사람 중에서 제 계열의 제자로는 중궁과 민자건의 이름만 보입니다. 중궁은 ‘논어’와 별도로 공자 말씀을 간추린 ‘경간집(敬簡集)’이란 6편으로 이뤄진 책을 남겼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공자보다 250년 뒤 태어난 순자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순자’의 ‘비십이자’편은 제자백가 사상가 12명을 매섭게 비판합니다. 여기에는 유가의 적통으로 알려진 자사와 맹자도 포함됩니다. 순자는 그러면서 “성인(聖人)으로 제왕의 권세(權勢)를 얻지 못한 사람은 오직 공자와 자궁(子弓)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또 결론 부분에서 “위로는 순임금과 우임금의 제도를 본받고 아래로는 공자와 자궁의 도의를 본받아 십이자의 학설을 종식시켜야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궁이 누구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중궁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순자는 ‘비십이자’편에서 ‘논어’ 편찬에 참여한 자계열의 제자도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자장, 자하, 자유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순자가 자하 계열의 학통을 이어받았다는 통설은 어폐가 있습니다. 오히려 중궁의 학맥을 이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다만 순자는 치평파인데 중궁은 덕행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수제파일 것이라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논어’속 중궁은 덕행과 통치력에 대한 내용이 반반에 가깝습니다. 사실 통치력에 대한 찬사로 “남면할만하다”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이 장의 내용도 통치력 중에서 용인술에 대한 내용입니다. 원문의 유사(有司)는 창고지기와 같은 일을 맡는 하급관료를 뜻합니다. 첫 번째 지침인 “유사를 선(先)하라”는 말은 두 갈래 나눠 해석됩니다. 실무관료를 우대하라는 뜻 아니면 그들을 솔선수범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후자로 새겼습니다. 그들을 찍어 누르지 말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사소한 잘못을 물고 늘어지지 말라는 두 번째 지침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세 번째 지침이 핵심입니다. 현명한 사람을 발탁하라는 말에 중궁은 그 노하우를 묻습니다. 공자의 답은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의 화신답습니다.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지혜로운 사람을 먼저 발탁하면 소문이 나서 주변에서 현명한 사람을 천거하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입니다. 현명한 사람을 멀리서 구하려 하지 말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발탁하면 저절로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추천이 올 것이란 말입니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때 관건은 자신의 사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을 기용하기 보다는 소원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으로 현명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그 객관적 안목에 대한 신뢰가 생겨 다양한 인재 추천이 밀려들 것이란 조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주변 인물 중에서 사심 없으면서 재주 있는 사람을 발탁해 나가면 굳이 “널리 인재를 구한다”고 생색내며 광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안목을 알아보고 자천타천으로 인재풀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둥 신분고하를 묻지 않고 인재를 구한다는 둥의 말을 떠들어대기 마련입니다. 초한지의 치트키였던 한신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도 못 알아본 항우나 마궁수 시절의 관우의 진가를 못 알아본 원소․원술이 대표적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중궁의 질문에는 자신에게 그런 안목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공자의 답은 “너는 이미 그런 안목을 갖췄으니 걱정하지 말고 주변사람 중에서 괜찮다 싶은 사람들부터 적극 발탁하라”는 것입니다. 제왕이 될 그릇이라고 말했던 중궁의 안목을 믿었기에 가능한 충고인 것입니다. 그러니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함부로 따라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특히 주변에 좋은 말만 골라하는 아첨꾼과 자기 잇속 챙기기 바쁜 장사꾼만 있는 사람이 주변 인물을 발탁하면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말을 남발한다면 구제불능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