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의 정치적 슬로건

12편 안연(顔淵) 제24장

by 펭소아

증자가 말했다. “군자는 글로써 동지를 모으고, 동지로써 어짊의 실현을 돕는다.”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



자여(증자)의 이 말은 보통 ‘글을 통해 뜻이 맞는 친구를 사귀고, 어진 사람이 되도록 서로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자여가 정치적 도보다는 윤리적 덕을 더 강조한 수제파이다 보니 이러한 해석이 더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仁)을 어진 사람으로 새기게 되면 정치적 함의가 강해집니다. ‘글로써 뜻 맞는 동지를 모아서 어진 사람을 보필한다.’


벗을 뜻하는 한자로 붕(朋)과 우(友)가 있습니다. 둘 다 고대 거북의 배껍질이나 짐승 뼈에 새긴 갑골문(胛骨文)과 청동기에 주입한 금문(金文)에선 씨족사회에서 연령 계층상 같은 항렬에 놓인 사람을 지칭합니다. 붕은 조개 묶음 두 개를 하나로 꿴 형상에서 비롯했고, 우는 신에게 바치는 제기에 두 사람이 손을 얹어 맹세하는 형상을 땄습니다.


동주시대 즈음 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합니다. 붕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거나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벗을 뜻하니 죽마고우에 가깝습니다. 우는 서로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성인이 된 뒤 의기투합하게 된 벗을 뜻하니 지란지우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벗을 대신해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동지라는 뜻의 문경지우(刎頸之友)로도 새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매우 강한 정치적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함께 사상서를 읽으면서 동지애를 다지고 진정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칠 어진 이를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대동단결한다는 뜻입니다.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혁명을 모도하자는 함의를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표현이 문(文)과 인(仁)입니다. 둘 다 공자가 좋은 정치의 본질로 간주한 문덕(文德)과 인정(仁政)을 상징합니다. 문덕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글의 힘, 즉 문명에 의한 통치를 말합니다. 인정은 어진 정치를 뜻하니 백성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정치를 말합니다.


이러한 가치지향을 표방한 사람들이 폭력적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려는 혁명을 준비한다는 해석은 과도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써 뜻을 함께 할 동지를 모아 어진 정치를 이루자는 소프트혁명을 꿈꾸는 메시지로는 충분히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표현이야말로 공문(孔門)의 제자들이 표방한 정치적 슬로건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논어’ 편집에 참여한 공자 제자들은 이 메시지를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했을 겁니다. 그래서 정치성이 강한 자로나 자장의 입보다는 윤리성이 강하고 보수적인 자여의 입을 통해 이를 선언하게 함으로써 그 정치적 파급효과를 중화시키기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입에는 달콤한 꿀을 바르고 있지만 배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문이야말로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의한 통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결사체였습니다. 하지만 공문은 그 혁명성을 고대의 조화로운 정치의 복귀로 포장했습니다. 문덕과 인정을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그 혁명성을 중화시키고자 한 집단무의식의 산물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문회우 이우보인’는 그런 공문의 혁명적 정체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구밀복검의 슬로건 아니었을까요? 이 역시 저만의 뇌피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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