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顔淵) 제23장
자공이 벗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충고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되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멈춰라. 스스로 욕되지 않도록 하라.”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
자공문우 자왈 충고이선도지 불가즉지 무자욕언
앞서 붕(朋)은 이런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눈 죽마고우요, 우(友)는 생사고락의 뜻을 같이하는 지란지우라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友)는 그런 변별적 의미를 떠나 그런 친구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친구는 독립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생각이 반드시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반드시 같게 만들지 않아도 화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입니다.
다만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간곡히 이를 만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일 때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고 공자는 말합니다. 이때의 멈출 것이 충고일까요? 교유관계일까요? 많은 주석서는 절교 쪽으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죽마고우 원양(原壤)을 떠올려 보십시오(14편 헌문 제43장). 원양은 공자와 달리 도가적 색채가 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 방약무인했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관이 들어갈 곽(槨)에 올라타고 ‘나무결이 여인의 손을 붙잡은 사내의 주먹처럼 단단하네’라는 노래를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런 원양에 대해서 공자는 가끔 “이 버르장머리 없는 도적놈아”라며 쓴소리를 할지언정 결코 그 우정을 저버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공자는 수평적 교유관계는 물론 수직적 사제관계도 끊어낸 적이 없습니다. 제자 중에 부모3년상을 지키라 하였는데 끝까지 맞선 재아를 격렬히 비판할지언정 사제관계를 절연하지 않았습니다. 계손씨 가문을 위해 조세와 군역 부담을 늘인 염유에 대해 북을 울리며 집단 성토하라고 했을지언정 역시 파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속정 깊은 사내였던 겁니다.
주희 같은 송유는 장사꾼이라 싫어했지만 자공 또한 의리가 끝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공이 훗날 출세해 대부가 됐을 때 공자 아래서 동문수학한 원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청렴 강직했던 원헌이 아무런 관직을 맡지 않고 있을 때였으니 오로지 우정의 발로에서 나온 방문이었습니다. 다만 원헌의 추레한 행색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어찌 그리 심하게 병들고 쇠약해졌는가?”라고 인사말을 건넨 게 화근이었습니다. 문 앞까지 마중 나왔던 원헌은 “가난한 것일 뿐 병든 것은 아니다”라며 자공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공은 민망함에 몇 발자국 물러났고 평생의 부끄러움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자공은 원헌의 반응을 왜 그렇게 부끄럽게 여겼을까요? 우선은 자신의 잣대로 친구를 함부로 재단하고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이 장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자신이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꺠달음도 작용한 건 아닐까요? 공자의 가르침을 뒤집어보면 "진정한 친구라면 상대를 욕되지 않게, 즉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원헌의 일격을 받는 순간 스승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기에 더욱 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공은 뒤늦게나마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깁니다. 부와 권력을 쥐었다고 사람을 얕잡아보는 것 아니냐는 벗의 꾸짖음을 맞받아 치거나 중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좋은 길로 인도하는 충고로 받아들이고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원헌의 발언이 욕되지 않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원헌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난 인물로 기억되게 만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친구를 민망하게 만든 원헌과 그런 원헌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를 훨씬 더 높인 자공 중에 누가 더 위일까요? 누가 뭐라든 자공이 공자의 최고 제자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