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짊과 앎, 사랑과 이해

12편 안연(顔淵) 제22장

by 펭소아

번지가 어짊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앎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번지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곧은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 위에 앉히면, 굽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번지가 물러나 자하를 만나 말했다. “요전에 내가 앎에 대해 여쭸더니 스승님 가라사대 곧은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 위에 앉히면, 굽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하셨네. 무슨 뜻인가?”

자하가 말했다. “참으로 많은 걸 포괄하시는 말씀 아닌가!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 중에 고요를 뽑아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고, 탕왕이 천하를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 중에 이윤을 뽑아 등용하자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잖은가.”


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문인 자왈 애인

問知. 子曰: “知人.”

문지 자왈 지인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번지미달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樊遲退, 見子夏曰: “鄕也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번지퇴 견자하왈 향야오현어부자이문지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하위야

子夏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

자하왈 부재언호 순유천하 선어중 거고요 불인자원의 탕유천하 선어중 거이윤 불인자원의



앞서 말씀드렸듯이 번지는 자로와 염유의 뒤를 이어 공자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보디가드 겸 드라이버였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공문에 합류했지만 공자를 가까이서 모실 기회가 많았기에 평소 궁금하던 것에 대해 순박한 질문을 많이 던진 듯합니다. 이번 장에선 공자가 평소 강조해온 핵심가치로서 어짊(仁)과 앎(知)에 대해 묻습니다. 거기엔 “그게 도대체 뭐라고 스승님이 그리 강조하시는 겁니까?”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습니다. ‘자(子) 계열 제자의 자로’ 답게 우직한 질문입니다.


공자는 속으로 웃으면서 이 순박한 제자를 위해 최대한 쉬운 설명을 택합니다. 어짊에 대해선 “사람을 사랑하는 거”이요, 앎에 대해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 답합니다. 다른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과 비교하면 정말 단순 명쾌합니다.


번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란 표정을 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뜻을 이해 못해서가 아닐 겁니다. 그처럼 단순한 게 왜 그리 중요하다는 것이냐는 의문이었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 둘을 합쳤을 때의 정치적 효과로 설명합니다. 먼저 정치를 하려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선행해야 하니 그것이 바로 애인(愛人)입니다. 다음으로 백성을 위해서 부정한 사람을 물리치고 바른 사람을 발탁해야 하는데 누가 바른 사람이고 누가 부정한 사람인지를 구별하려면 지인(知人)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지인을 바탕으로 곧은 사람을 발탁해 높은 지위를 주면 그 밑에 있던 굽은 사람들도 곧아지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를 통해 누가 혜택을 받느냐? 일반 백성이니 다시 애인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공자가 일부러 쉽게 설명했음에도 번지는 쉬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는 비슷하지만 공문의 모범생으로 꼽히는 자하를 찾아가 보충설명을 청합니다. 자하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 이를 일깨워줍니다. 순임금과 은나라 시조인 탕왕의 태평성대가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한 고요(皐陶)나 요리사 출신으로 재상이 된 이윤(伊尹) 같은 곧은 이를 발탁해 중책을 맡겼기에 가능했다며. 순임금과 탕왕은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을 실천한 성인이었는데 그 바탕이 된 것이 지인, 곧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제 번지는 공자가 왜 그토록 어짊과 앎을 강조했는지 이해했을까요? 어렴풋이나마 이해했을 것입니다. 번지의 이름인 지(遲)는 그 뜻이 늦다, 더디다입니다. 그래서인지 번지는 군자학에 대한 이해가 늦터지고 더딘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주석서에서 소견이 좁고 노둔한 소인배라고 번지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번지는 토끼와 경주에서 이긴 거북이처럼 느려도 꾸준하고 착실한 면이 돋보일 때가 많은 인물입니다. ‘논어’에서 번지가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단순함 속에 심오함을 감추고 있습니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번지 역시 그렇게 진한 국물 맛을 내는 사람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2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친구를 대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