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21장
번지가 공자를 모시고 기우제를 지내는 산봉우리 아래서 한가로이 거닐다가 물었다. “덕을 높이고, 사특함을 다스리고, 미혹을 가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공자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로다! 일을 앞세우고 얻는 것은 뒤로 돌린다면 덕을 높이는 것 아니겠느냐?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되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사특함을 다스리는 것 아니겠느냐? 일시적 분노로 자신을 잊고 부모에게까지 누를 끼친다면 그것이 미혹 아니겠느냐?”
樊遲從遊於舞雩之下曰: “敢問崇德脩慝辨惑?”
번지종유어무우지하왈 감문숭덕수특변혹
子曰: “善哉問! 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脩慝與!
자왈 선재문 선사후득 비숭덕여 공기악 무공인지악 비수특여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일조지분 망기신 이급기친 비혹여
무우(舞雩)는 본디 기우제를 뜻하나 여기서는 기우제를 지내는 산봉우리를 말합니다. 공자시대에는 가뭄이 오래 들면 왕(천자)이나 제후가 산봉우리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아마도 예법에 밝은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뒤 노애공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에 자문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기우제가 끝난 뒤 산기슭을 거닐며 담소를 나눌 때 번지와 공자가 나눈 대화를 옮긴 내용으로 보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난 뒤이니 마음속에 경건함이 깃들어 있었을 터, 번지가 이번엔 덕(德)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숭덕(崇德), 수특(脩慝), 변혹(辨惑) 3가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각각 덕을 높이고, 사특함을 다스리고, 미혹을 가려내는 법을 말합니다.
공자는 그런 번지의 마음에서 덕이 깃들 그릇(德器)의 질박함을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흡족한 마음으로 그런 번지에게 걸맞은 수제(修齊)의 교훈을 내립니다. 숭덕에 대해선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수특에 대해선 ‘내로남불’에 빠지지 말고 ‘임기추풍, 접인춘풍(臨己秋風 接人春風)’을 실천하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혹에 대해선 일시적 분노로 자신을 망치고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번지는 무인이었습니다. ‘춘추좌전’에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노나라 군의 좌장군을 맡은 염유 휘하에서 번지가 무공을 세운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제나라 군이 돌진해올 때 십 대 후반 내지 이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담대하게 나서서 노나라 군의 동요를 막고 일사불란하게 병력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제나라 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무인으로서 번지는 이미 선공후사를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수덕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번지에 대한 칭찬에 가깝습니다. “그래, 너 잘하고 있으니까 그런 태도를 죽 견지한다면 높은 덕을 쌓기에 충분하다”고 격려해준 셈입니다.
두 번째 수특에 대한 가르침은 용기를 앞세우는 젊은이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경계한 것입니다. 자신의 용기만 믿고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을 비겁하다고 쉬이 책망할 수 있는데 그런 우를 범하지 말라고 타이른 것입니다. 공격할 공(攻)이라는 군사적 용어를 쓴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변혹에 대한 가르침은 번지 같은 무인에겐 뼛 속까지 새겨야 할 내용입니다. 용맹함을 앞세우고 늘 무기를 휴대하다 보니 일시적 화를 참지 못해 돌발행동을 벌일 경우 자신은 물론 가문에까지 큰 화(禍)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음미해보면 숭덕 ⟨ 수특 ⟨ 변혹 순으로 뒤로 갈수록 번지가 더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게 되면 공자가 왜 “좋은 질문이로다!”라고 반색했는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평소 번지에게 꼭 들려주고픈 교훈이었는데 그냥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듣고 흘려들을까 저어하여 번지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다 번지의 질문을 받게 되자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심중일언을 꺼내 든 것입니다.
감나무를 흔들어 따려 하지 않고 감이 스스로 익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스승이라니. 공자를 만세의 사표로 부르는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의 질문에 일반론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의 성격과 상황에 딱 맞고 꼭 필요한 답을 주는 것은 스승이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력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게다가 제자가 질문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배려심까지 갖췄기에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