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18장
계강자가 도적을 우려해서 공자에게 대책을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진실로 당신이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상을 준다고 해도 도둑질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계강자환도 문어공자 공자대왈 구자지불욕 수상지부절
공자 말년 15년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계강자는 계손씨의 7대 종주이던 계환자의 서장자였습니다. ‘춘추좌전’을 보면 노애공 3년 계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가신인 정상(正常)을 불러 당시 임신 상태였던 부인인 남유자의 아이가 아들이면 그를 후계자로 삼고 딸이면 계강자를 후계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계환자가 죽자 계강자가 임시 종주의 자리에 올랐는데 얼마 후 남씨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상은 노애공에게 계환자의 유언만 전하고 후환이 두려워 바로 위나라로 피신했습니다.
계강자는 태연하게 노애공에게 가서 임시 종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누군가가 아기를 죽였습니다. 범인이 잡혔지만 배후를 불지 않고 처형당했고 계강자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계손 씨 8대 종주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위나라로 도피한 정상은 아무리 불러도 끝내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좌전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만 누가 봐도 계환자의 유복자를 살해한 배후에 계강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후대엔 이를 근거로 공자가 종주의 자리를 도둑질한 계강자에게 ‘종주의 자리를 도둑질한 주제에 무슨 도둑 걱정이란 말이냐?’고 꾸짖은 것이라 해석합니다. 과도한 해석입니다. 계강자는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였습니다. 또 14년간 천하 주유에도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공자의 노나라 귀환을 허가한 사람입니다. 설사 계강자를 마뜩지 않게 여겼을지라도 그렇게 대놓고 비판할 순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선 바로 앞에서 살펴본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의 연장선상에 있는 충언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위정자 자신이 사리사욕에 물들지 않으면 백성들도 그런 위정자를 따라서 탐욕을 버리게 되니 도둑도 줄어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정자정야(政者正也)의 테마’에 입각한 지침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계강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우리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계강자가 실제 동생의 죽음을 사주했다면 그만큼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이 컸을 것이고 그만큼 공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을 게 뻔합니다. 제자인 염유, 자공, 번지 등이 노나라에 기용됐음에도 스승인 공자는 아무런 직책을 맡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공자의 발언이 계강자의 혐의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지만 그 혐의가 유죄임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이 또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상대의 알리바이를 허물어뜨리는 또 다른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