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약례 vs 번문욕례

12편 안연(晏然) 제1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문덕을 깨치기 위해 널리 배우고, 예악으로써 이를 묶어낸다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子曰: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박문약례(博文約禮)라는 약어로 많이 인용되는 공자 말씀입니다. 6편 ‘옹야’ 제25장에선 거의 같은 내용이 나오고, 9편 ‘자한’ 제10장에선 ‘문덕으로써 나를 넓혀주시고, 예로써 나를 단속해주신다(博我以文, 約我以禮)’라는 안연의 비슷한 발언이 등장합니다.


보통 박문약례는 ‘널리 글공부하고, 예로써 몸에 새기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원문을 곰곰이 뜯어보면 박학(博學)의 대상인 문(文)은 단순히 글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글공부를 통해 깨닫게 되는 문리(文理)를 말한다고 봐야 합니다. ‘논어’에는 문리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대신 문덕(文德)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문덕은 글을 읽고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어 빛을 발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약지이례(約之以禮)의 지시대명사 지(之)가 받는 것이 무엇이냐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저는 문을 받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곧 문을 예(禮)로써 약(約)한다는 뜻이 됩니다. 예는 정치공동체에서 합의된 문명질서를 뜻합니다. 그 공동체의 조화와 화합을 함의하는 악(樂)과 짝을 이뤄 예악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약은 ‘묶는다’와 ‘요약한다’는 뜻을 함께 갖습니다. 그러니 문덕의 핵심을 예악으로써 요약해낸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문덕과 예악은 나란히 대구를 이루는 개념으로 파악될 때 그 뜻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문덕이 내용이라면 예약은 형식입니다. 문덕이 이치라면 예악은 실천입니다. 문덕이 원인이라면 예악은 결과입니다. 문덕이 대하(大河)라면 예악은 우물입니다. 문덕이 뿌리라면 예약은 꽃이나 열매입니다. 문덕이 공자의 사상이라면 예악은 그것을 말로써 엮은 ‘논어’입니다.


이런 이해를 토대로 다시 문덕과 예악을 획득할 방법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각각 박(博)과 약(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은 그물을 던져 잡는 방법입니다. 되도록 광범위해야 던져서 걸리는 대로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약은 그렇게 잡은 사냥감 중에서 꼭 필요한 것만 추리고 걸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문덕을 깨치기 위해선 온갖 학문을 섭렵해야 하지만 이를 예악으로 제도화할 때는 그 고갱이만 간추려 담아내야 합니다. 문덕이 넓고도 깊다면 예악은 단순하고 간결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고 나면 박문약례의 반대어가 될 사자성어가 무엇이 될지도 명확해집니다. 심오한 문덕은 꿰뚫지 못하면서 횡설수설 변죽만 울리거나 미사여구로만 가득한 글 그리고 복잡다단한 규정과 절차를 뜻하는 ‘번문욕례(繁文縟禮)’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문약례는 차라리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소네트 '런던에서, 1802년 9월(Written in London. September, 1802)'의 한 구절에서 따온 ‘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생활은 단순하게, 생각은 고상하게)'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박문약례의 실천은 첫째 고전(古典)이라 불릴만한 빛나는 글 속에 숨은 깊은 뜻을 간파하는 것이요, 둘째 이를 누구나 손쉽게 실천할 수 있게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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