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중용되면 나라가 망하나니

12편 안연(晏然) 제1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송사를 접하고 그를 처리하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것은 송사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자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호



유가와 법가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발언 아닐까 싶습니다. 법적 판단을 청하는 소송으로 넘어간 단계가 되면 유가와 법가는 별 차이가 없어집니다. 당시엔 법적 소송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터인데도 공자는 일단 송사가 벌어지면 어짊이나 덕의 영역은 철저히 무화되고 승자독식의 아비규환 사회가 될 것임을 꿰뚫어 봤습니다.


이는 법치주의가 확립된 현대 민주국가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변호사를 예외로 하고 검사건 판사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기 전 양측 간 합의와 화해를 적극 권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법적 분쟁으로 갔을 때 ‘상처뿐인 승리’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설사 이겼다 해도 상대가 승복하지 않으면 감정의 앙금만 깊게 남게 됩니다.


심지어 유교 국가를 천명했던 조선이 17세기 이후 사대부 가문 간의 온갖 송사로 사분오열하다 신음 끝에 수수깡처럼 스스로 무너져 내렸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송사로 분열된 나라가 되는 순간 공자 아니라 공자 할아버지가 와도 구제불능의 사회가 되고 맙니다.


21세기 한국사회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들이 과열된 정쟁을 벌인 끝에 최종 심판 권한을 시험 실력만 좋은 사법부에게 넘겨줌에 따라 지금 무슨 일들이 벌이지고 있나요? 우병우 게이트, 양승태 게이트, 조국 게이트,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이판사판 게이트, 고발 사주 게이트, 대장동 게이트….


그 실체를 보자면 법비(法匪)들이 얽히고섥힌 법조 게이트입니다. 검찰개혁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법조삼륜은 물론 법학교수들까지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에 부정부패가 벌어지는 곳에 법조계 인맥이 곰팡이처럼 피어있다는 것이 정확한 현실 진단입니다.


헌데 그러한 현실을 타파해야 할 차기 대통령 유력주자들 대다수가 법조인 출신입니다. 여당 후보는 변호사 출신이고, 제1야당 후보는 검사 출신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결코 어진 정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법조인은 참모와 조언자에 머물러야지 결코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나라는 결국 영원히 봉합되지 않는 분열과 무한 증식하는 혼돈 속에서 무너져 내릴 뿐입니다.


중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법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섰을 때 단기적으로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 정치인 그 자신은 비명횡사하고, 나라도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최초의 법가 사상가로 꼽히는 상앙은 진(秦)나라 승상이 된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자신이 세운 법망에 걸려 거열형으로 사지가 찢겨 죽었고 일가족도 모두 처형됐습니다. 법가사상에 입각해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우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올랐던 이사 역시 허리가 잘려 죽었고 일가족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일계만세를 꿈꾼 진시황도 구더기 먹이 신세가 됐고 통일왕국 진의 역사는 3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북송 때 정치개혁을 위해 신법이란 사법개혁을 들고 나왔던 왕안석의 개혁 역시 처절히 실패했고 송나라는 오히려 신법당과 구법당으로 분열돼 혼란만 더욱 가중됐습니다. 결국 송나라는 요나라와 금나라에 쫓겨 남송으로 쫓겨났다가 원나라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부국강병을 강조하면 국가보안법과 유신헌법을 들고 나왔던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비명횡사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더욱 끔찍한 전두환 정부를 불러왔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훨씬 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방영된 박경수 작가의 SBS 드라마 '펀치'를 기억하십니까? 인권변호사 출신 법무장관(최명길 분)과 흙수저 출신 검찰총장(조재현 분)이 대권의 야망을 위해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둘 다 사갈같은 존재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드라마 내용은 몇 년 후 한국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됐습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함께 동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법치주의는 ‘법 앞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지 권력의 시녀 내지 조력자에 불과한 법조인 출신들이 활개 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송사가 벌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어진 정치’의 핵심이라는 공자의 저 일갈을 21세기에 맞게 ‘법조인에 의지하는 한 어진 정치는 실현될 수 없다’로 새겨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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