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언절옥한 자로의 판단력

12편 안연(晏然) 제1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한두 마디 말을 듣고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유(由: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승락한 것을 이행하지 않고 질질 끄는 법이 없었다.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자왈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자로무숙락



두 가지 주석이 엇갈립니다. 하나는 자로의 과단성 있는 판단력을 칭송하는 내용이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13장에서 “송사를 듣고 처리하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것은 송사가 없게 하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과 연계한 것입니다. 공자는 법적 분쟁 발생 자체를 경계했지만 자로는 그저 시비를 가리는 재주만 뽐내기 급급했다는 비판이 담긴 내용입니다. 후자의 주석은 철저히 수제파의 관점입니다.


자로는 비록 언행아 거칠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무적 판단능력은 확실히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공자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머뭇거릴 때마다 자로는 질문의 형식을 빌려 스승이 올바른 길을 택하도록 압박하고 종용했습니다. 제나라의 미인계에 걸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음을 제일 먼저 간파한 것도 자로였습니다. 노나라의 공산불요나 진나라의 필힐이 반기를 들고 공자를 초빙했을 때 이를 뿌리치도록 종용한 사람도 자로였습니다. 또 천하주유 기간 공자가 위나라에서 위령공의 부인인 남자와 독대한 일이 괜한 구설수에 오를 것임을 꿰뚫어 보고 힐책한 이도 자로였습니다.


‘편언절옥(片言折獄)’이라 일컫기도 하고 ‘쾌도난마(快刀亂麻)’라는 후대의 표현에 부합하는 판단력을 보여준 셈입니다. 본문 중에서 앞 문장은 그에 대한 공자의 진솔한 평가입니다. 하지만 자로는 하겠다고 승낙하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었다는 표현은 공자의 것이 아닙니다. 공자는 제자를 부를 때 자(字)가 아니라 명(名)으로 불렀기에 공자의 발언이라면 앞의 문장처럼 자로가 아니라 유(由)라고 불러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로의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는 공자의 발언 뒤에 공문의 다른 누군가가 자로에 대해 평한 내용이 더해진 것으로 봐야합니다.


자로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내였습니다. 또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무인이었습니다. 공자가 “이익 앞에서 의리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고 목숨을 바칠 수 있으며, 한번 약속한 것이면 평생 잊지 않는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14편 헌문 제12장)”라고 평한 그대로였습니다. 자로의 정무판단 능력은 바로 그렇게 사심 없이 세상을 바라봤기에 얻어진 것입니다. 이것저것 재고 계산하느라 좌고우면 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공자 역시 사심 없는 맑은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로의 과단성 있는 판단력을 높이 평가한 이 장의 발언 역시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자는 자로보다 더 깊고 멀리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판단의 속도가 자로보다 뒤질 데가 많을지언정 그 방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로가 나무만 바라볼 때 공자는 숲까지 아울러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나라 제후가 재상으로 기용하면 가장 먼저 명분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한 공자의 발언을 놓고 자로는 공자가 우원하다하고, 공자는 자로가 거칠다고 논쟁을 펼친 대목(13편 자로 제3장)이 이를 대표합니다. 자로는 눈앞의 현실에 충실한 현실주의를 주장했다면 공자는 이름과 실체를 일치시킬 때 비로소 정치인의 말이 힘을 얻게 돼 실행될 수 있다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수제파는 그런 자로를 비딱하게 바라보지만 자로야말로 그런 공자의 이상주의적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말년의 자로는 위나라 집정대부인 공회의 가신으로 있을 때 공회가 협박에 굴해 위나라 제후의 자리를 위출공에게 넘기려 하는 순간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우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를 갖추고 죽음을 맞습니다. 최후의 순간 자로는 상황판단이 빠른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스승의 정명의식에 감화된 이상주의자로 죽었습니다. 수제파들이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는 자로의 위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자 자로의 그런 변화를 끌어낸 공자의 위대함을 곱씹게 만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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