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안연(晏然) 제11장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것입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좋구나!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아비가 아비답지 않고, 자식이 자식답지 않다면 비록 쌀이 있다한들 어찌 내가 편히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겠는가?”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제경공문정어공자 공자대왈 군군신신부부자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공왈 선재 신여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부자 수유속 오득이식저
‘정자정야(政者正也)’만큼이나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을 대표하는 구절입니다. 정치는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는 것이 되어야 하니 곧 이름과 실체를 일치시키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사람은 저마다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로만 새기면 주어진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적 해석이 됩니다. 하지만 한 꺼풀 더 들어가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다면?’이라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면 맹자의 혁명사상과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정명사상은 동전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제경공(강저구)은 공자의 동시대 제후로서 무려 58년이나 재위에 있던 인물입니다. 당시 제나라는 가장 부유한 나라였으며 진(秦)나라, 진(晉)나라, 오나라, 월나라와 더불어 최강국의 하나였습니다. 더 나아가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의 이웃국가였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공자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제경공은 그런 제나라 군주로 공자 생애의 대부분 기간 재위에 있던 인물이니 어찌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제경공 곁에는 공자가 동시대 인물로 드물게 인정한 안영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경공이야말로 공자에겐 문제적 제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자가 그런 제경공을 대면한 것은 노나라와 제나라의 협공 회동의 의례를 주관했던 50대 초반일 때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30대 중반에 제나라에 도피성 유학을 떠난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 공자는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기에 연배가 훨씬 높았던 제경공이 일부러 불러다 정치에 대해 질문했을 리 만무합니다. 허나 협곡회동 때는 노나라 측 의례를 주관하는 상례(相禮)를 맡아 제나라의 상례를 묵사발로 만들며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을 때였습니다. 제경공은 그런 공자의 식견을 시험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을 것이고 이때의 공자의 답이 ‘논어’에 채록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장에서 공자의 답변에 대한 제경공의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합니다. 그저 공자의 탁견을 존중한 화답으로만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 쌀과 밥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요? 원문에선 쌀이 아니라 오곡을 통칭하는 속(粟)이 쓰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엔 쌀이 드물었기에 신하들에게 녹봉을 줄 때는 좁쌀인 속을 줬습니다. 그래서 좁쌀이 오곡의 대명사가 된 것인데 오늘날에 맞게 쌀로 바꾼 것입니다.
제 추론으로는 제경공이 해당 질문을 던졌을 때가 협곡회동에서 제나라와 노나라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만찬석상이나 그 다음날 오찬석상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의례를 주관하면서 예에 어긋난 것을 추상처럼 지적하고 나선 공자가 고까웠을 제경공이 공자를 망신 주려는 이런 속마음으로 질문을 던졌을 공산이 큽니다. ‘유자(儒者)인 그대가 의례는 제법 아는지 모르겠으나 정치에 대해서도 그럴까? 정치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공자가 이를 간파하고 ‘임금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면 제대로 정치한다고 할 수 없다’는 속내가 담긴 뼈 있는 답을 내놓습니다.
허를 찔린 제경공은 말이 길어지면 불리하다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런 맥락의 화답을 내놓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멋진 답이네. 과연 우리 제나라에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내가 이 밥이 어떻게 목구멍에 넘어가겠나? 그러니 정치 얘기는 그만하고 맛나게들 밥 먹자고.”
어쩌면 거기엔 ‘어쭈? 내 앞에서 우리 제나라를 씹겠다는 거야? 까불고 있네. 네 말대로라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 이렇게 맛나게 밥을 먹고 있겠냐?’라는 빈정거림도 숨어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공자에게 잽을 던졌다가 스트레이트를 맞고서 꼬리를 내린 쪽이 결국 제경공이었으니 공자의 판정승이란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