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차원의 문(文)

12편 안연(晏然) 제8장

by 펭소아

(위나라 대부) 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바탕에 충실해야 하거늘 그걸 포장하는 문채가 어찌 필요하단 말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군자에 대한 대부의 말씀은 안타깝기 짝이 없구려! 한번 내뱉은 말은 사두마차로도 쫓아갈 수 없다 했습니다. 문채는 바탕을 닮고, 바탕은 문채를 닮습니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도 털을 제거하면 개와 양의 가죽과 다를 바 없는 것과 같습니다."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극자성왈 군자질이이의 하이문위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 猶犬羊之鞹."

자공왈 석호 부자지설군자야 사불급설 문유질야 질유문야 호표지곽 유견양지곽



질(質)과 문(文)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를 둘러싸고 언어유희 한판이 펼쳐집니다. 질은 고대 화폐 대용물이던 조개(貝)와 나무를 팰 때 받침이 되는 받침목을 뜻하는 모탕(斦)의 합성어입니다. 값어치 있는 것을 받쳐주는 것이란 의미에서 바탕, 실체, 본질이란 뜻과 돈을 빌리기 위해 저당 잡히는 물건(저당물) 또는 인질이란 뜻이 파생됐습니다. 이 장에서 질은 바탕, 실체, 본질을 뜻합니다.


문은 본디 고대 통과의례 때마다 얼굴과 몸에 새기던 문신을 의미했습니다. 거기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민다는 무늬 또는 문채(文彩)라는 뜻과 문신이 가져다주는 신령스러운 내면의 힘이란 의미를 함께 갖게 됐습니다. 전자는 표면과 관련된 것이요, 후자는 내면과 관련된 것이니 한 글자에 상반된 두 가지 의미가 깃들게 됐습니다.


그럼 글월이란 3번째 뜻은 또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요? 상형문자인 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인물 창힐은 천지만물의 형상을 본뜬 글자를 문(文)이라 부르고 거기에 소리와 의미를 더한 것은 자(字)라 불렀다고 합니다. 둘을 합쳐 문자(文字)가 됐지만 한 글자로 표현할 때는 문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문자 컨텐츠 전체를 문으로 통칭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외형을 본뜬 것이니 무늬에서 파생된 것이냐?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순 없습니다. 하늘의 내적인 질서를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천문(天文)이고, 인간이 축적해온 문화와 질서의 표출이 인문(人文)이듯 문자 또한 삼라만상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꿰뚫는 신령스러운 무엇이었기 때문입니다.


극자성은 이런 문의 3가지 뜻을 표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무늬(문양과 문채)라는 한 가지 뜻으로 묶어냄으로써 공자 학단이 중시한 문덕(文德)을 깎아내리려 합니다. 군자는 바탕과 본질을 중시해야 하는데 겉만 번지르르한 문채와 거기서 파생된 글공부와 문덕에 그리 집착하느냐고 공문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는 사실 논리학에서 말하는 ‘허수아비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3가지 차원의 문을 무늬라는 1가지 뜻으로 못 박아 놓고 “그게 글공부가 됐건 문덕이 됐건 다 바탕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껍데기에 불과하다”라고 싸잡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자공의 반박은 세 갈래로 이뤄집니다. 첫째는 무늬로서 문(文)에 대한 직관적 반박입니다. 호랑이와 표범가죽이 개가죽 보다 비싼 것도 다 그 무늬 때문 아니냐고 받아친 것입니다. 원문의 곽(鞹)은 털을 뽑아 버리고 가죽만 무두질한 것을 뜻합니다.


다른 두 갈래 반박은 ‘문은 질을 닮고, 질은 문을 닮는다’는 뜻의 ‘문유질야 질유문야(文猶質也 質猶文也)’의 문맥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두 번쨰 반박은 호랑이와 호랑이 가죽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호랑이와 그를 지칭하는 글자 호(虎), 곧 글월과 떼놓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그런 글월을 읽는 글공부를 통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은 문덕이 곧 그 사람됨의 바탕이라는 함의입니다. 글공부를 통해 문덕을 쌓지 않으면 그 바탕 또한 부실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으니 ‘문(文)=질(質)’이 됨을 왜 모르느냐고 일갈한 것입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자공의 논박에는 이렇게 3겹의 중층적 함의가 숨어있습니다. 주희와 같은 송유들은 이를 간과했습니다. 그들은 진리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이원론자였습니다. 그래서 질과 문을 표면과 내면으로 대비한 극자성의 발언이 내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극자성의 발언도 일리가 있고 자공의 발언도 일리가 있지만 어느 한 면만 취한 것이라는 양비론을 펼칩니다. 주희가 ‘부자지설군자야(夫子之說君子也)’라는 자공의 발언을 “대부의 말씀이 군자답긴 하지만”라고 해석한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할 것입니다.


자공은 단지 말재주와 재치만 뛰어난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깊숙이 터득한 애제자의 하나였습니다. 그렇기에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공자가 믿었던 인문의 힘을 저렇게 직관적이면서도 심오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주자는 자공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장사치에 불과하다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자공이 화려한 외양과 질박한 내면을 동일시했다고 섣불리 단정한 것입니다. 질과 문을 이분법적 대립관계로 파악한 주자와 그 둘의 변증법적 통합을 꾀한 자공, 둘 중 누가 더 고수라 생각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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