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서 on으로 스위치 바꾼 말 한마디

11편 선진(先進) 제17장

by 펭소아

“고시는 어리석고, 증참은 느려 터졌고, 전손사는 치우쳤고, 중유는 거칠다.”


柴也愚, 參也魯, 賜也辟, 由也喭.

시야우 참야노 사야벽 유야안



앞서 살펴본 16장에서 안연과 자공 두 제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하던 공자가 이 장에선 사뭇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고(고시), 자여(증참), 자장(전손사), 자로(중유) 네 제자를 일언지하의 쓴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애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만고의 사표께서 이러시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어 원문을 곰곰이 뜯어봅니다. 자고를 표현한 우(愚)에는 어리석다는 뜻 말고도 뭔가를 우직하게 추구한다는 긍정적 의미도 담겼습니다. 자여를 칭한 노(魯)는 아둔하고 미련하다는 뜻이지만 거북이처럼 느려 터졌을지언정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이 있다고 새겨볼 수 있습니다. 자장에게 쓴 벽(辟)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있다는 편벽(偏僻)과 상통합니다. 그 역시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본다는 긍정적 마니아 기질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자로를 표현한 안(喭)은 거칠다는 뜻입니다. 세련되지 못하고 정치하지 못함을 타박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박력 있고 야성미 넘친다는 뜻도 됩니다.


제자들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그 이면에 숨은 장점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기에 가능한 표현 아닐까요? 그런 자신감이 있기에 저렇게 단호한 표현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제자들 또한 이를 마음 깊이 승복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고 보면 타고난 성정을 고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듯합니다. 여기 언급된 4명의 제자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그들 평생은 물론 사후에도 이어졌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차이가 존재합니다. 4명의 제자 모두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그 표현의 부정적 원뜻을 긍정적 의미로 승화시키는데 어느 정도씩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자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던 자고는 자로와 공자가 모두 죽고 난 뒤인 노애공 17년 노나라와 제나라가 맹약을 맺을 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의례를 사실상 주재하는 모습이 ‘춘추좌전’에서 엿보입니다. 자여는 공자 사후 공문의 본토인 노나라에서 최대 학파를 이끌며 자사와 맹자로 이어지는 학맥의 조종이 됩니다. 자장은 공자의 학맥을 계승한 팔대 문파인 팔유(八儒)의 선두주자로 떠오르며 다른 제자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는 대유(大儒)가 됩니다. 자로는 말할 것도 없이 스승이 자신에게 내린 지침을 좇아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박력 넘치게 실천하다 죽음을 맞으니 가히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경지에 근접했다 할 만합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공자를 만나기 전 그들은 번데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내면의 긍정적 잠재력이 개화하면서 나비로 환골탈태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공자의 일언지하의 쓴소리는 그들 영혼의 스위치를 off상태에서 on상태로 전환시켜줬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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