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민자건의 스승인 이유

11편 선진(先進) 제12장

by 펭소아

민자건은 공자를 곁에서 모실 때 온화하고 공손했고, 자로는 뻣뻣하고 고지식했으며, 염유와 자공은 즐겁고 유쾌했다. 공자는 제자들의 이런 다양성을 두루 좋아하면서도 “중유와 같다면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行行如也. 冉有子貢侃侃如也. 子樂. 若由也不得其死然.

민자시측 은은여야 자로항항여야 염유자공간간여야 자락 약유야부득기사연



4명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민자건과 자로, 염유와 자공입니다. ‘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나이는 자로가 가장 많아야 하는데 민자건이 맨 앞에 나왔고 심지어 ‘민자(閔子)’라 하여 선생님으로 호칭되고 있습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제 공문에서 민자건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다는 해석과 '논어' 편집 당시 민자건 제자들의 입김이 그마큼 컸다는 해석입니다.


제자는 넷이지만 염유와 자공을 하나로 묶였기에 그들의 특징을 포착하는 형용사는 셋입니다. 은(誾)은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할 때 공손하고 온화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은은(誾誾)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친다는 뜻입니다. 반면 행(行)과 간(侃)은 뜻이 여럿이어서 해석이 분분합니다.


行은 ‘다닐 행’과 ‘항렬 항’ 2가지에 모두 형용사가 있습니다. ‘다닐 행’이 형용사로 쓰일 대는 ‘좋다, 괜찮다’와 ‘뛰어나다, 훌륭하다’처럼 주로 긍정적 의미를 띱니다. ‘항렬 항’이 형용사로 쓰일 때는 드물게 ‘강직하다, 뻣뻣하다’로 해석될 때가 있습니다. 侃은 ‘굳세다, 강직하다’는 뜻과 ‘화락하다’는 정반대의 뜻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그에 해당하는 제자의 평소 성품과 맞지도 않고 문맥의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다행히 간간(侃侃)은 은은(誾誾)과 함께 10편 ‘향당’ 제1장에도 등장합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화평하고 즐겁다(和樂)는 뜻인데 侃侃이 격의 없이 웃고 떠들며 유쾌한 것에 가깝다면 誾誾은 정중함과 공손함을 갖춘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뜻합니다. 이 장에서도 민자건은 온유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면 염유와 자공은 유쾌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로에 대해 쓴 行行은 뻣뻣하고 강직하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문맥에 부합합니다. 공자가 자로만 콕 찍어서 “중유처럼 저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제 명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자로는 공자가 죽기 1년 전에 강직하게 ‘견위수명(見危授命)’을 실행에 옮기다가 칼에 맞아 죽습니다. 그때 나이가 62세였습니다. 자로만 초점에 두면 공자의 선견지명이 대단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3명의 제자 중에 자로보다 더 빨리 더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공자가 죽기 8년 전에 50대 초반에 숨진 민자건입니다.


만일 민자건 제자들의 입김으로 이 장이 ‘논어’에 편입됐다면 더 이른 나이에 숨진 민자건 얘기는 쏙 빼고 자로 얘기만 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민자’라는 호칭을 쓸 거면 민자건이 돋보이는 다른 장에서 쓰는 게 더 그럴듯하지만 다른 장에선 그런 호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약유야부득기사연(若由也不得其死然)'을 별도의 장으로 보는 주석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엔 공자의 발언이 너무 뜬금없어집니다.


이를 종합하면 민자건을 자로 앞에 세우고 ‘민자’라는 경칭을 붙인 것은 공문에서 그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보는 게 맞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승인 공자조차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외제자(畏弟子)였기에 다른 제자들 또한 그에겐 특별히 공손하게 대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덕행에서 첫손가락에 꼽힌 안연이 공문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품의 소유자였다면 민자건은 가장 존경받는 인품의 소유자였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그런 민자건은 왜 공자의 제자가 된 것일까요? 인품이나 통찰력은 민자건이 더 뛰어날지 몰라도 학문의 박식함과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 그 그릇의 크기에 있어선 공자를 따를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요? 이 장에서 드러나듯 공자는 온화한 민자건뿐 아니라 버릇없다 느껴질만큼 떠들썩한 염유와 자공 그리고 고지식한 자로까지 각양각색 제자들의 개성을 아끼고 존중했습니다. 요즘 말로 유연한 다원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그런 공자의 군자학을 도덕심성론으로 일원화시킨 증자-맹자-주자의 관점에 선다면 공자보다 민자건이 더 위대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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