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들이 외면한 공자의 진면목

11편 선진(先進) 제11장

by 펭소아

자로가 귀신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못 섬기면서 어찌 귀신을 잘 섬기겠느냐?”

자로가 다시 죽음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계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감문사 왈 미지생 언지사



‘논어’에서 가장 파격적 내용이 등장한 장입니다 공자가 제사와 의례를 전담한 유(儒) 집단의 학문을 심화시켜 군자학을 벼려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로(계로)의 질문은 바로 그 군자학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제사장 출신 철학자에게 영혼을 장례지내는 것과 사후세계에 대해 질문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 대한 공자의 답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진배없습니다. 귀신 잘 섬길 시간 있으면 사람을 더 잘 섬기고, 죽음의 문제를 붙잡고 고민할 시간에 삶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3년상과 조상 제사를 유가의 신줏단지처럼 여기던 이들에겐 충격적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저렇게 말씀하신 건 다 깊은 뜻이 있어서야’라며 그 본뜻을 희석시키는 해석이 난무합니다. 제 생각엔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이리저리 회피하는 걸로만 보입니다. 공자에게 부모 3년상과 마찬가지로 하늘이나 종묘사직에 올리는 제사는 종교적 심성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어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의 산물일 뿐이란 것입니다.


공자가 부모 3년상을 그토록 줄기차게 주장한 표면적 이유는 부모가 아기 때 무한 정성으로 보살펴준 3년 세월에 대한 응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혈통에 상관없이 정치적 지도자를 꿈꾸는 군자(君子)가 되기 위한 명분 축적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당시 부모 3년상을 지내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왕(천자)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엔 ‘혈통이 아니라 학문으로 군자가 되려는 너희가 부모 3년상을 모시고 나면 엄청난 도덕적 우위를 획득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군자몽을 펼쳐라’라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종묘사직에 제사를 모시는 것 역시 그것의 효험을 믿어서가 아니라 국가질서 유지와 백성의 단합과 화합에 도움이 된다는 합리적 이유에서 ‘기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공자가 주창한 예(禮) 사상의 실체입니다.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고 평화를 유지하는 치평(治平)의 목적에 합리적으로 부응하기에 제의를 중시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훗날 장자가 말한 ‘득어망전 득토망제(得魚忘筌 得兎忘蹄)’의 살아았는 실천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리고, 토끼를 잡고 나면 그물을 잊어버리라’라는 그 말처럼 유인(孺人)의 전통에서 예(禮)와 인(仁) 사상으로 무장한 통치학으로서 군자학을 벼려낸 뒤엔 유인의 전통까지 집어던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은 순자에게 이어졌지만 증자(자여)-맹자-주자 이 삼자(三子)에게선 망실되고 말았습니다. 그 정통 후계자를 자처했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그 부작용으로 사람을 섬기는 일은 망각한 채 귀신을 어떻게 섬기느냐는 문제를 국가 대사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대스승인 공자가 군자학을 벼려낸 뒤 진즉에 던져버린 고철덩어리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희비극이 발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유교가 아니라 군자학으로 새겨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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